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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8일 토요일

[애니]공각기동대 TV판

10.12.06 작성

감독 : 카미야마 켄지
출연 : 타나카 아츠코,오오츠카 아키오


<<1기, 2기>>

Stand Alone Complex(이하 SAC)...

 결국 이 작품은 한 실존의 주체성과 파시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얘기들은 니체가, 사르트르가 수없이 많이 얘기했던 내용들이고, 이를 만화라는 매체로 한 번 더 변주해 보인 것 뿐이라 별다를 건 없다.

 1기와 2기는 다른 종류의 SAC를 이야기한다.

 먼저 1기. 전뇌화, 의체화에 대한 그 어떤 설명없이 바로 스토리에 돌입한 부분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먼저 나온 극장판을 보라는건가? 그래도 TV판이라는 새로운 매체판의 1기인데 그런 점에서는 잘못된 듯 싶다. 여기서는 '웃는남자'사건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주축으로 다양한 사건을 옴니버스적으로 엮어간다. 그러면서 사회의 부정부패를 지적하고, 또 그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SAC 환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작가의 세계관이 명확해서 각본이 조금 떨어지지만 스토리를 잘 끌고 나갔다.


 문제는 2기. 난민 사건과 개별 11인. 모두 난민과 관련된 하나의 이야기다. 이 스토리들을 우리는 모두 아는 입장이 아니라, 공안 9과의 입장으로 차근차근 알아나가게 되는데, 그러면서 이 만화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간다. 각본 자체에는 1기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렇지만 여기서 들어난 국수주의, 군국주의, 그리고 한국을 격하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왜 중국, 러시아, 태국 등 다른 국가는 국가의 이름을 쓰면서 한국은 반도라고 표기하는가! 한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근대화가 뒤쳐진 미개한 나라로 드러낸다. 그리고 반도의 내전이라 말하며 6.25전쟁을 변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일본의 난민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난민 문제는 무엇인가? 좁게는 재일교포와의 문제이며 넓게는 대한민국과의 문제다. 재일교포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존재로 애매하게 규정되어있다고 한다.(서경식 선생의 책을 보면 잘 나온다.) 여기서 난민은 일본의 국민을 뭉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드러내며 그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왜 한국을 SAC로 규정하는가! 그들은 모토코 소령이 말했듯이 네트의 바이러스로 뭉친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고스트를 가진 상태로 하나의 뜻을 향해 뭉쳤다. 그것이 고다 카즌도의 계획과 비슷하게 간다고 해서 그들은 무지각한 대중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다 카즌도의 시나리오대로 난민에 대한 이성적 판단 없는 증오를 갖게된 일본 국민이 대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번역자가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일본 자위군이라고 하는가! 일본은 엄연히 군대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위대로 나타난다. 그 존재를 군으로 승격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번역자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일본 자위대는 공격권을 쥘 수 없는데 여기서 드러난 자위대의 공격권은 그것이 군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는 증거이다.

 하나로 뭉친다고 SAC는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 총리와 아라마키 과장이 말했던,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뭉쳐야 할 때입니다."라는 표현도 SAC인가? SAC는 각 개인의 이성적 판단없이 사회라는 거대한 존재가 이끄는 의식에 의해 무비판적인 증오와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어떠한가? 민주화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의 필요성과 그 부재를 바라보며, 광주의 민중들은 함께 뭉쳤다. 그것은 그들의 각자의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쿠사나키 소령은 난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작가 자체가 우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며 자기 멋대로 평가하는 모습... 그 모습에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기>>
 이 애니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3기를 보게 만든 그 힘이란...
 3기에 대해서 짤막하게 추가글을 써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노인들과 정치인. 그리고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정의감. 이 세가지가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해 조직적인 유괴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나 수단은 결과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수많은 사건에 대해 무엇이 옳은지 가치판단을 내려주지는 못하지만 9과는 사건을 들추어낸다. 그 부조리 안에서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 우리가 부조리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존재자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 순간에도 부조리와 대항하는 모토코 소령. 그는 시지프스였다.(카뮈 - 시지프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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