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를 다녀오면 서로 받은 은혜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면 그 은혜의 감정들은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많이 경험합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합니다. 그 중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묘사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실 때도, 그 어느 아버지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기 싫어하겠느냐는 질문으로 알리십니다.(마7:7-11)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는 친밀함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에게 구하는 것은 부모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어린 아이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떼를 써봤자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도 규명하십니다.(요15:1-10)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과실을 맺는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이 친밀한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님, 친구들과 서먹서먹해졌을 때 무언가 부탁하기 어려워지고, 그로인해 더 멀게만 느낍니다. 상대방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데 나 혼자 전전긍긍할 때가 있습니다. 이 관계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가끔씩 예배를 드리다보면 감정이 북받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 믿음이 약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였습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모습처럼 말입니다.(눅15:11-32) 수련회에서 큰 은혜를 받는 경우도 그와 비슷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평소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근근이 유지하다, 수련회라는 계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찬송하고, 오래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가운데 느끼는 감격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고, 오랜 세월 타지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느끼다가, 갑자기 친한 친구가 찾아오면 너무도 반가운 것처럼 말입니다. 그 친구와 2박 3일간 즐겁게 지내고, 다시 친구는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 며칠은 그 친구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을 회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외로움을 느낍니다. 수련회를 통해 느낀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배터리처럼 충전했다가 조금씩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누리며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 말씀을 들은 후에도 그 말씀을 기억하는 양이 조금씩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하다보면 결코 제 자신의 지적 능력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이는 말씀을 통해 더욱 강한 은혜를 받고, 또한 매일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가운데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릴 때, 냉랭해진 제 마음을 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수련회를 통해 느낀 귀한 감정들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 이후 수련회 때처럼 하나님을 구하고, 찾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학업, 또는 직장 일을 핑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 노력하지 않고, 혼자 슬금슬금 멀어졌으면서, 그런 말들을 뱉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래 참으시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감정이 메말랐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욱 깊이 할 때, 수련회에서 느낀 것보다 더욱 큰 충만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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