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18 작성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타나베 켄
#1. 소재. 철학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꿈과 기억"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 싶다. 그의 전작 "메멘토"에서도 그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메멘토"를 통해서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만 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그 모습을 통해 케케묵은 철학적 논쟁인 회의론과 이데아론 문제로 향한다.
과거, 장자가 그러했고, 구운몽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도 "꿈"이라는 소재로, 현실과 꿈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끄집어 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꿈속의 꿈"(결국에는 림보로 도달하는)이라는 복잡한 구조로 들어가, 결국엔 우리가 꿈에서 깨어 현실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과 기억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즉 현실과의 연계성을 논한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적 견해에 반박하는 이들이 꿈과 현실을 구별하는 커다란 징표 중에 하나로, 꿈을 꾸는 동안은 현실을 알지 못하나 현실에서는 꿈을 지각한다는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 내세운 것 같다.(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견해를 가져온것같은데...)
마지막에 코브(디카브리오)는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공간조차 토템이 계속 돌아가고 있는, 꿈의 공간이다. 즉, 현실과 꿈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라는 데카르트의 질문 속으로 빠져든다.
#2. 윤리.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윤리적인 논점으로 향할 수 있다.
1)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꿈과 구별할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 우리는 이데아를 찾아야 하는가, 그저 현세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영화라는 매개체로 보여준다는 사실에서 그 대답은 뻔하기도 하지만, 꿈 속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고 어차피 이데아를 찾으려 해봤자 찾는 곳은 또 다른 꿈일 뿐인데, 그저 현세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구원을 찾지 말라고 말하는 듯 싶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3) "꿈속의 꿈"이 꿈에서 자행되는 것은 옳은가?
4) 우리는 스스로 속이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그 속임수에서 깨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윤리적으로 과연 옳은가?
현실이 꿈이라면, 사이버 공간은 꿈 속의 꿈이다. 그렇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선정성이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물론 앞에서 현세계에 충실하라고 했지, 그 속의 꿈에서도 최선을 다하라고 하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이 질문을 넘길 수도 있따.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꿈이라면, 그 안의 꿈의 법칙이 재현하는 것에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우리는 대답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재구성해본다면, 결국 아내는 죽었고,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꿈 속에 스스로 접속했고, 그 속에서 아내의 꿈에 다시금 접속했다고 볼 수 있따.(나의 이해로는...) 결국 꿈을 꾼 이유는 아내의 죽음과 그 책임에서 회피하기 위해서이며, 그가 하려는 행위는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마치 "라쇼몽"의 주인공들이 거짓 속에서 헤매고 있듯이...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는 깨어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그가 현실에서 아내인 멜을 죽인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일 수 있지 않은가!
#3. 종교.
기독교, 영지주의, 불교, 토테미즘 등 다양한 종교들이 혼합되어있다. 그 중 특별히 불교와 영지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그 윤회의 고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해탈이다. 영화에서 꿈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매체가 된다. 꿈을 통해 타자의 기억으로 들어가고, 그 기억은 그 실존과 연결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현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니까. 전혀 다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해탈을 할 수 있는 방법,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앎"을 제기한다. 우리는현실이 꿈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한단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종교적 다원주의는 현 세태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4. 기독교
나의 종교적 견해로 봤을 때 이 영화는 굉장히 두려운 영화다.
더 이상 이 시대는 구원을 찾지 않는다. 더 이상 진리를 찾지 않고,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성향으로 돌진하여 모든 것을 해체하고 동일한 가치를 부여한다. 현실과 가상은 결국 동일하다.
그리고 우리가 찾는 진리는 앎을 통하여 얻어진다. 우리는 만약 구원을 찾고자 한다면 지식을 갈구해야한다. 즉 철학, 지성이 하나의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죄의식'이라는 문제도 제기한다. 코브가 끊임없이 느끼는 감정은 아내인 "멜"에 대한 죄의식이다. 그는 그러하기에 이데아(현실)를 갈망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원죄에 의해 요원해진 하나님과의 관계에 포커스를 두지 않는다. 다만 그 죄의식을 자꾸만 덮어두려고만한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여 그 죄의 대가를 치루었다고 속이게 된다.
이 영화는 애초에 반기독교적 관점에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러한 반기독교적 정서가 흠뻑 물든 영화가 탄생한 듯싶다. 과연 나는 시대를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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