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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8일 토요일

시(詩)(2010)

10.06.11 작성

감독 : 이창동
출연 : 윤정희, 이다윗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창동 감독은 궁극적으로 '시의 회복'을 꿈꾼다. 시는 보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이 우리에게 묻는다. 사과를 본 적이 있냐고... 그리고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답한다. 없다고.
 본다는 것은 그 대상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태껏 소통하지 않았다. 어떤 내면의 진정성을 따르지 않고, 돈과 명예와 같은 하찮은 것에 스스로를 버렸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내던졌다.
 황병승 시인은 시는 죽었다고 말한다. 이 세대는 시를 버렸다. 우리 내면에 시를 간직하고 있는가!

 아이들 6명은 한 소녀를 성폭행했고, 그 아이는 자살했다. 죄책감은 없다. 그저 일상일 뿐이다. 6명의 남학생들의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저 합의를 보려할 뿐이다. 그 모든 과정에는 돈이 중심이 된다. 죽은 소녀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저 해결되야 할 문제일 뿐이다. 시의 죽음은 영혼의 죽음이다.
 양미자씨가 간병을 하는 한 사내. 그 사내는 그를 간병해주는 미자 할머니와 섹스하기만을 바란다.
 시를 낭송하는 경찰. 그에게 있어 시는 기교이며 교양이다. 그는 시를 낭송하지만 시보다 음담패설이 중요하다. 시는 자신의 교양을 드러내는 잣대일 뿐이다. 이러한 수단으로서의 '시'를 양미자씨는 시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가 순진한 사람이라며 그를 옹호한다.
 이러한 장면이 반복된다. 현대인들은 파우스트다. 세상이라고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우리의 영혼을 팔았다. 괴테와 달리 이창동 감독은 문제를 제기한다. 영혼이 없는 우리에게 구원은 없다고...

 시 수업을 마칠 때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 뿐이다.
 우리는 시를 쓰지 않는다.

 양미자씨는 꽃과 <아네스의 소녀>라는 죽은 소녀에 대한 추모시를 남겨놓고 떠나가버렸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단지 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의 곁으로 갔으리라고... 강물이 비춰진다. 죽음의 강. 그러나 죽음은 세상의 더러움의 반대편에 존재해, 아름답게만 보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감독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과 시의 회복에의 갈망. 이것은 나의 심금을 울리며 눈물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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