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4년 2월 8일 토요일

다우트(2008)

11.04.01 작성

감독 : 존 패트릭 샤인리
출연 : 메릴 스트립,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 굉장히 종교색이 짙은 영화평이 시작될 것이다.


 이토록 좋은 영화를 왜 영화관에서 못봤는지...

 주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그리고 연출과 각색도.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립이 드러난다. 그것은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라 같은 광경을 대하는 두 사람의 시선을 통한 대립이다.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긴장감을 고조한다.
 그리고 알라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가 직접 대면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카메라를 기울인다. 그 왜곡된 시선은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영화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신부가 어떻게 행동할까 굉장히 궁금했다.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현명한(신부의 입장에서도, 영화의 입장에서도) 방식임을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녀가 제명당하길 바랐다. 나는 또 누군가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나는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매력보다도 그 안의 메세지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
 인간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저러하리라.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우리는 믿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다.
 "나의 연륜"을 통해. 나의 "감각"을 통해...
 그러나 그것이 결코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교만이다.
 그러나 끝까지 플린 신부는 알라이시스 수녀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그녀가 그를 믿도록 설득할 뿐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신부의 결백함에 대해 영화는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다. 심정적으로 아니다 쪽에 미치지만 그것은 알라이시스 수녀의 생각과 전혀 다를바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의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편협함과 교만함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구원을 예정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자들을 정해서
 지옥에 버리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유기하신다는 말씀이다.
 수녀는 끝까지 회의한다.
 그리고 그 회의의 결과로 죄를 범하게 된다.(거짓말)
 그러나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교만하기에.
 그 결과는 믿음에 대한 회의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그 어떤 원칙보다도.
 그 사랑에 대해 삐딱하게 보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은 어긋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용서하신다.
 결코 정죄하지 아니하신다.
 도널드가 성찬에 사용될 술을 마셨을 때도
 신부는 그를 정죄하여 복사 자리에서 내치지 않고
 그의 아픔을 감싸 않았다.

 교만하지 말자.
 의심하지 말자.
 정죄하지 말자.
 나의 지성을 확신하지 말자.

P.S. 의심이란 끝없는 과정이다. 데카르트가 방법론적 회의를 시작했을 때 마지막 이른 결론은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것인가? 그가 다른 모든 사실에 대해 의심한 방식을 적용해도 그 누구도 이상하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자세가 훨씬 진솔하며 와닿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Blogger Tips And Tricks|Latest Tips For Bloggers Free Back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