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23 작성
감독 : 밀로스 포만
출연 : 잭 니콜슨,루이즈 플레쳐
"어쨌든 시도는 해봤잖아 최소한 노력은 해봤다구!"
정신병원의 무력한 이들을 향한 맥머피의 절규다.
맥머피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이는 모두가 알고 있다.(렛취드 간호사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를 교도소로 다시 이송시키지 않고 정신병원에 가둔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물론 맥머피는 어린 소녀에게 성폭력을 행사하고 5번의 싸움에 연루된 흉악범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너머의 더 무서운 폭력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 흉악범의 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고 그 시스템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교도소로 재이송시키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것은 그를 교화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를 억압하기 위한 목적이다.)
시스템(정신병원)은 결코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그들이 계속 환자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그들이 무력하기를 바란다. 그 누구나 쉽게 병원 밖을 벗어날 수 있지만(단지 유리창만 부수면 도망갈 수 있는 곳이다.) 그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세뇌되었기 때문에. 자발적이기 때문에.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최종 결과물이 맥머피다.(그는 결국엔 추장의 아버지처럼 무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곳을 휘젓는 맥머피는 반동분자일 수 밖에 없다. 1984의 윈스턴(주인공)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빅브라더는 그를 죽여야만 한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지만 숨은 쉬고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삶의 부조리 속에 저항하지 못하는 비존재자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맥머피는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환자들이 미친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미친 것이며 한 존재자로서 그들을 구원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도 나와 같이 자각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그것이 좋든 좋지 않든간에) 깨우치기 위한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맥머피는 시스템에 의해 희생당했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시스템은 너무도 거대하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가 아니다. 추장은 시도를 했으며 성공했다. 그리고 무력했던 그의 의지는 깨어났다. 그리고 모든 이들은 환호한다.
뻐꾸기에게 둥지가 있었던가? 내가 기억하기로 뻐꾸기는 다른 이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에게는 둥지가 없다. 그런데 사회는 우리(뻐꾸기)에게 자꾸만 둥지안에 갇히기를 원한다.
그 위로 날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갇혀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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