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4년 2월 8일 토요일

카사블랑카(1942)

10.11.04 작성

감독 : 마이클 커티즈
출연 : 험프리 보가트,잉그리드 버그만


 엄밀히 보자면, 이 글은 영화 <카사블랑카 - 마이클 커티즈(1942)>에 대한 리뷰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에 나는 이 글을 쓴다.

술잔을 들며
-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

                        정현종

1
불행이 내게 와서
노래부르라 말한다
피 흘리는 영혼 내게 와서
노래부르라 말한다.
내 인생은 비어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잃어버렸다고 대답하자
고통이 내게 와서 말한다 -
  내 그대의 뿌리에 내려가
  그대의 피가 되리니
  내 별 아래 태어난 그대
  내 피로 꽃 피우고 잎 피워
  그 빛과 향기로 모든 것을 채우라.

2
우리들의 고통을 헤아려보겠다고?
모래알을 헤아리면 된다
모래알 하나에서 우주를 본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우주를 갖고 있다.

3
김씨 이씨네의 한 많은
두부찌개들이 보고 싶습니다
보면 먹지 않고
한없이 바라만 보겠습니다
고통의 별 아래 태어난 우리들,
한국을 사랑하는 것은
그 별빛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새의 날개를 만든 뒤
더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겨드랑이에서 눈물이 돋습니다
돋으면서 슬픔으로 날자 상처로 날자 외칩니다

4
꽃들 좀 피어나거라
지식 국화, 농부 진달래
학생 장미, 노동 패랭이
제 값으로 피어나는 소리 좀 열려라
남도창, 정선 아리랑
천안 삼거리, 명동 블루스
부채춤, 강강수월래, 구고무, 불놀이
북, 꽹과리, 가야금, 기타아......
이쁜 가슴 비벼 이는
푸른빛의 메아리 속에
자유 있는 육체와 육체 있는 자유로
일과 춤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며
농부들은 씨 뿌리고
시인들은 노래하며
학자들은 생각하고
애인들은 사랑하는 땅
아 우리들의 명절이 있어야겠다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난 정말 공감이 되지 않았다. 군인의 신분으로 이런 말을 하면 안되겠지만, 난 정말 군대의 정신교육을 싫어한다. 오히려 그러한 교육을 통해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난 아나키스트다. 국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국민(!)이 아닌, 자율적인 시민(!)의 자발적인 동참으로 이루어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나는 지향한다. 토크빌이 그러했고, 한나 아렌트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가의 어쩔 수 없는 결말인 부패를 나는 증오한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참 모순된 존재이기에, 올림픽, 월드컵 경기를 하면 한국을 응원하게만 되고, 그 어떤 일에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 그것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이렇게 서로 만날 수 없는 두가지 오묘한 감정이 나란히 진행되는데, 군에서 강요하는 국가에 대한 파시즘적인 찬양 속에 나는 "조국"에 대해 삐딱한 자세만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 시를 만났다.
 시인이 한국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의 별 빛 아래 태어난 우리의의 배경인 그 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배에 함께 탑승한 동반자로서 서로의 고통을 나누기에 그 배를 사랑하는 것이다.

 일리자(잉그리드 버그만)는 릭(험프리 보가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라즐로(그녀의 남편)도 진심으로 사랑했다. 모두 진실한 감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그녀.
 라즐로는 그녀를 사랑한다. 릭도 그녀를 사랑했단 사실을 알기에, 진정한 로맨티스트인 그는, 결국 그녀만이라도 카사블랑카에서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
 릭은 일리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를 떠난 그녀를 증오했다. 하지만 다시금 릭은 일리자와 라즐로에게 통행권을 내준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선생님 남자로서 말해주세요. 누군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오직 당신의 행복만을 위해 나쁜 일을 저지른다면 용서할 수 있겠어요?"
 한 여인이 릭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랑에 눈이 멀면, 나쁜 일도 저지를 수 있다. 자신의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다. 릭과 라즐로는 일리자를 사랑하기에 서로 카사블랑카에 있겠다는 희생을 감당한다. 그리고 거짓말도...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간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자네는 감상주의자였군" 이라 말하는 르노 대위의 말처럼, 우리는 감상주의자이기에 조국을 사랑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고, 그 무게로 인해 가벼워진 나는 조국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부패한 경찰 르노 대위가 마지막에 릭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까닭은, 그러한 연대 속에 느낀 동질감이다.

 나는 여전히 자치제를 옹호하며, 그 풀뿌리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우리의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우리가 서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Blogger Tips And Tricks|Latest Tips For Bloggers Free Back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