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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8일 토요일

키에슬로프스키 삼색 연작 - 1. 블루/자유(1994)

11.05.10 작성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출연 : 줄리엣 비노쉬,브느와 레정


 영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파란색이 지배한다. 블루, 화이트, 레드. 프랑스의 국기를 상징하는 세가지 색. 그 세가지 색 중 자유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먼저 나타난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이미 정치적인 자유를 얻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추구한 것은 무엇일까? 실존적 자유다.(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영화는 같은 음악과 같은 색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불안함을 고조시킨다.
 줄리는 남편과 딸이 죽은 뒤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는 사고에서 살아났지만, 그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의 골에서 그녀는 도망친다. 아무도 그녀를 찾을 수 없을 곳을 향해.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 객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주관적인 관계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녀가 공간을 벗어난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그녀에게 자유를 얻으라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절대적인 사랑은 없으니 거기서 벗어나라고 한다.
 창녀인 아래층 여자는 스트립바에서 일을 하면서 그의 아버지가 여자와 놀아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곳에서 일한다. 남편의 죽음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줄리에게 남편의 정부가 나타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며 완전한 가치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 세상 속에서 그저 즐기라 한다. 그 속에 자유는 존재하니.


 그러나 실제로 그러할까? 그녀의 깊은 내면 속에 묻힌 남편과 딸의 기억은 언젠가 떠오를 것이다. 그녀가 잊으려할 수록 그 기억은 드러날 것이다. 다만 그것을 떠올리기 싫을 뿐.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하는 그 순간조차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고 선언하는 그 순간, 오히려 우리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영화처럼 살 수 없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예속될 수 밖에 없으며 그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모든 기억을 버리고 싸늘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기억을 품은 채, 그 아픔을 안은 채 뜨거워지는 것이 아닐까?

P.S. 화이트를 보고나니 이 영화도 정치적인 색채 위에 그려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화이트에서 폴란드어만을 사용하는 카롤에 대한 프랑스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그러며 폴란드와 프랑스의 관계를 넌지시 보여주려한다(그러나 실패한듯). 블루에서는 어쩌면 우리가 흔히 얽매이기 쉬운 속박감에서 벗어나라는 정치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었던게 아닐까? 예를 들면 광해군이 사대주의를 벗어나려 했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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