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일을 되도록 미루지 않고 미리미리 해두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성격 탓에 어떤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마감기한이 다가오면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이런 급한 성격으로 인해 종종 잘못을 저지릅니다.
성도들의 실패에는 많은 원인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내 힘으로 그 때를 이루려고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여 년간 애굽에서 지낼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하셨고(행7:6), 70년 포로생활을 예레미야를 통해 알리셨고(대하36:21;렘29:10), 그리스도의 강림을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하셨습니다(창49:10;시2:7;사9:7;미5:2 등). 우리가 연단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더라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며, 애굽인을 죽인 모세처럼 혈기를 부린다면 우리는 실패할 따름입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훈련받았으나,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 돌판을 집어던질 만큼 여전히 성질 급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신9:17) 그러나 이는 사랑에 근거한 행위였으며 그는 연단을 통해 인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면모가 많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급한 성격’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실패하는 이유를 보다 본질적으로 살펴본다면 단순히 성격이 급해서가 아니라, 제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성취될 것이며, 내게 좋은 것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는 인내가 부족한 탓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조금씩 더 연단시킬 것을 믿고 기대하며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마7:7)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때 주십니다. 저는 “이를 통하여 저를 더욱 성장시켜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가 많으나, 기도의 응답은 거절로 나타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거절당하는 순간 속은 쓰라립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이루어지지 않은 간구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과 혈기가 더욱 컸음을 깨닫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은 간구를 돌아보면, 결과보다는 과정이 아쉽습니다.
저는 제법 현실적인 편입니다. 미래를 걱정하며 대비책을 준비합니다. 미래의 실직, 노후걱정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미리 걱정합니다. 물론 그러한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저는 주님께서 곁에 계시며 나를 돌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모님께서 목회자라는 신분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태껏 살아왔음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러합니다. 제가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한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때, 많은 원망을 했습니다. 1년, 2년이 지나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나의 교만함을 직면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인지할 뿐만 아니라, 제 계획을 꺾으심으로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예비하셨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얼마나 믿을만한 분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사실 기도의 ‘응답’은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살펴야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대화라는 점에 있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응답이 직접적인 소리로, 감정으로, 결과로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감과 감정은 부패하여 얼마나 믿을 수 없습니까! 또한 현실에서 결과가 나타났으나 내재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기도의 응답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뒤따릅니다. 제가 이에 대해 답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본다면 개인적인 욕심과 교만을 돌아보며, 내가 기도한 진정한 목적을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말씀은 아마 이를 가리키는 말씀인 듯합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힘들 때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할 수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그러한 간구를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다만 들어주시지 않았을 경우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환자들을 고친 사도 바울도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세 차례나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네 은혜가 족하다.”고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고후12:7-10) 물론 우리는 사도 바울과 달리 대부분 그러한 직접적인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설교자의 말씀을 통해, 큐티를 통해, 주변 사람의 충고를 통해, 그 외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을 알아채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께 의지해야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에 간절히 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 경우 기도의 응답은 말씀과 주변 상황을 통해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응답 받은 경우, 어떤 구절이 생각났다고, 또는 어떤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고 응답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선교를 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6-7)”이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 생각하여 갈 수 없는 상황, 형편임에도 무리해서라도 가야겠다고 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이는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열두 제자에게 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전도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해외로 선교를 나가는 것은 또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외로 어느 기간동안 선교를 가게 될 경우 일어나게 될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그것이 현실에 어떤 영향으로 나타날 것인지 떠올리며 고민하는 것이 더욱 타당해보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제약 조건들이 어쩌면 내가 가기를 막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닌지 떠올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을 욕되게 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상황을 통해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교회 강대상을 사기 위해 간적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있던 강대상은 나무로 된 굉장히 낡은 강대상이었는데, 한 성도 분께서 강대상을 교체했으면 좋겠다며 헌금하셔서 사러 간 것이었습니다. 강대상 두 개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예쁜 것이 더 비쌌습니다. 그런데 금액을 보니 싼 것이 헌금 액수와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주신 것 같다며 싼 것을 샀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이미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하신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나, 그러고 싶지 않아 몸부림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정말 싫은 누군가가 있는데 계속 마주해야하니 짜증나서 “제게는 왜 이렇게 사랑이 없나요? 저도 저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데,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나네요. 사랑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라고 숱하게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나 결국 반응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알면서도 그 순종이 싫어서 버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의 간구가 개인적인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실 때가 많습니다. 사회 정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의 불의를 보며 분노를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도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부조리합니다. 그러나 욥기, 하박국을 읽으며, 출애굽기과 계시록을 읽으며 깨닫는 사실은 사탄은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으며, 사탄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과정의 도구로 쓰임 받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껴야겠지만 그와 함께 하나님의 큰 계획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기도 때문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내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관용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제 생각과 다른 이들에 대해서 그렇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 저입니다. 이토록 교만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기도해야합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됐군요. 신년 계획, 앞으로 몇 년간의 계획 등 앞을 내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전에 열심히 간구했던 것들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응답을 찬찬히 되새겨보는 것도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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