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니다보면 유독 많이 듣는 단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분주함"이다. 그러나 성경을 뒤져보면 개역개정, 또는 개역한글을 기준으로 단 한 차례만 등장한다.(개역한글에서 대하23:12에 등장하는 표현은 다른 의미다.)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눅10:40)
이 부분을 다른 역본 성경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But Martha was distracted with all her preparations (NASB)
But Martha was distracted by all the preparations(NIV)
영어 번역을 보면 마음이 분주하다는 표현을 'be distracted with/by'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마르다는 단순히 바빴던 것이 아니라 "distracted"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distract는 (정신이)집중이 안 되게 하다, (주의를) 딴 데로 돌리다
라는 뜻이다. 그녀가 예수님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려한 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이는 결코 책망받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과정에 있어 그 목적은 잊고, 자신이 하고 있던 "일"에 집중력을 빼앗겼다는 사실이 잘못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과정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각 부서 임원을 하고, 교사를 하고, 행정 업무, 청소, 식사 준비, 차량 봉사 등... 이런 수많은 봉사를 하며 우리는 때로 그 본질을 놓치고 "일" 자체에 집중하게 될 때가 많은데 이를 경계하도록 주시는 말씀이다.
'분주하다'는 "몹시 바쁘게 뛰어다니다. 이리저리 바쁘고 수선스럽다."는 의미의 단어로, 이런 소란스러움을 함축한다. 즉 이 단어는 "바쁘다"는 그 자체를 말하기보다는, 바쁘다보니 중요한 것에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 바라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반면 busy는 가치 중립적인 단어다. 문맥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단어다. 몇가지 용례를 살펴보겠다.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사32:6a) (For the fool speaks folly, his mind is busy with evil: He practices ungodliness and spreads error concerning the LORD; (NIV))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2:5) (to be self-controlled and pure, to be busy at home, to be kind, and to be subject to their husbands, so that no one will malign the word of God.(NIV))
취직 준비와 시험 준비를 하느라 "분주해서" 교회 일을 못하겠다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핑계가 "바빠서"가 아니라 "분주해서"다. 정말 "바쁘다"면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주하다"면 더욱 경건생활에 힘쓰며, 교회 봉사에 힘써야 한다.
여기서 "바쁘다"고 말한 것은 그냥 바쁘고 힘든 것을 의미하는 정도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음식 솜씨가 뛰어나, 교회 식당 봉사를 하면 좋겠으나, 내가 일하는 회사가 주말에도 항시 출근해야해서 갈 수 없는 경우이다. 봉사가 아니더라도, 회사 사정상 수요예배, 성경공부 모임을 드리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고서는 쉽게 핑계대서는 안된다. 물론 나도 이에 있어서 떳떳하지 못하고, 그러하기에 회개한다. 그러나 "분주하다"는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닌, 지금의 나의 영적 상태를 조망하는 단어다. 그만큼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있다는 말이며, 그러할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려 노력해야한다. 분주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분주하기에 더더욱 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연구실의 출퇴근 시간은 오전10시-오후10시다. 보통은 그보다 1-2시간 더 있는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을 하는 친구들 뿐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봐도 나와 정해진 근무 시간이 비슷할 뿐더러, 야근도 한다. 신자든 불신자든 가리지 않고 현대인들은 대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께서는 평강을 약속하셨으나, 바쁜 삶에서 빠져나오라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더욱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예배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웃들을 돕고, 가진 돈도 나누고, 시간도 쪼개어 교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세상 사람들보다 편하게 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하는 것이 참 기쁨이며 내 삶의 목적이기에, 그리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기에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죽음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힘들게 사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나도 이미 편하게 사는 것에 적응하여 조금만 힘들면 쉽게 칭얼댄다. 나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점점 더 나약해지고 있는 듯 하다. 힘들 때,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이겨내기보다는 힘들다고 투정하고 사람들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들게 살았는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길이 평화로워 그저 편안히 길 안내만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다니엘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가!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던가!
"바쁨"의 옳고 그름이 세상 일과 교회 일로 구분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이분법을 싫어하지만, 굳이 이 글에서 반박하지는 않겠다. 자세한 내용은 쉐퍼의 글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나 다니엘만 보아도 왕궁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아가는 이상,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해내야 한다.
나는 결코 우리가 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나약해져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불신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삶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기에 오늘의 고난을 견뎌낼 힘과 소망이 있다. 그러하기에 비록 내 삶이 허무한 듯 보이지만 희망이 있고, 위안이 있고, 평강이 있다.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고 오래참는 것은 나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하며,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리고 특별히 나는 그 풍성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치열함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