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괴테가 쓴 이탈리아 기행처럼 멋드러진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물론 매일 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역시 역량이 부족하다. 비록 훌륭한 글은 아니더라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여전히 가치있다고 느껴지기에 글을 남긴다.
#에딘버러(스코틀랜드)
이곳의 아침은 평온하다.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니 푸른 잔디 위에서 한 사내와 개가 공을 가지고 논다. 건너편 집들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조금씩 새어나와 오늘이 성탄절임을 알린다. 간밤에 비가 왔나보다. 촉촉히 젖은 땅과 잿빛 아파트, 아침의 적막함, 맞은편에 보이는 언덕.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다. 맞은편 언덕은 높지는 않지만 가파르게 경사가 깎여 있다. 누군가 언덕을 사선으로 베었나보다. 그 베어진 틈으로 2명의 사람과 개가 오른다. 십자군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블로크의 모습이 떠오른다.(영화-「제7의 봉인」,1957년作) 아! 이곳은 스코틀랜드지! 아더왕이 저곳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적막을 깨고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고흐에게 밀밭 위 까마귀의 모습이 저러했을까? 짙게 드리워진 구름과 어우러져 불길한 징조를 전달하는 전령의 모습 같다.
성욱이가 일어났다. 맞은 편의 언덕은 Arthur's Seat이라고 한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퀴즈를 맞춘것 같아 기분이 좋다. 성욱이와 함께 에딘버러를 둘러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먼저 구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1500년대에 세워진 에딘버러 대학을 통해 성장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Old College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에 떨어진 기분이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도 등재되어있어, 깨진 창문 하나 고칠 때도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차들도 종종 다니는데, 사람들이 그냥 신호에 구애받지 않고 막 걸어도 차들이 알아서 멈춘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관광객이란다. 우리나라였으면 어림없는 모습을 겪으니 굉장히 어색하다. 보행자로서는 좋았지만, 내가 운전자라면 짜증날것 같다. 물론 통행 차량이 많지 않다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걷다보니 가끔 새로운 건물도 보인다. 그 중 '에딘버러의 흉물'이라 불리는 학교 건물을 보게 되었다. 건축 실패 사례로 교과서에서도 종종 회자된다고 한다. 참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것은 쉽지 않나보다. 건물 1층을 개조하여, 원색의 페인트를 칠한 가게들이 종종 보인다. 불법이라지만 그래피티도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그 모습이 도시의 활력을 불어준다.
에딘버러는 '북부 지방의 아테네'라 불린다고 한다. 에딘버러에서 계몽주의를 시작하며, '새로운 아테네'를 표방하여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이제 신시가지로 왔다. '데이비드 흄'이 사랑했던 길, '흄 워킹'을 따라 '칼튼 힐'에 오른다. 짓다만 기둥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파르테논 신전을 본 뜬 건물이다. 이는 '북쪽의 아테네'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으려 하다가, 돈이 없어 완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어디든지 돈이 문제다. 결국 찬란한 문화는 '부'의 산물이 아닌가! 돈이 문화를 만들진 않지만, 돈 없이 문화를 창출하기는 어렵다.
돈 얘기를 하니 하는 말인데, 구시가지에서 개조중인 건물들을 몇군데 보았다. 몇년째 진척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돈도 문제겠지만, 비오는 날은 비가 온다고 공사를 못하고, 또 다른 날은 다른 핑계로... 트램을 짓기 위한 공사도 계획했으나 돈이 없어 멈춘 상태라고 했다. 그러고보면 한국은 참 동적이고 바쁜 나라다. 성욱이가 말하는데, 트램은 보기보다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 유럽에서 경쟁적으로 짓고 있다고 한다. 사실 관광의 목적이 더 큰 것 같기는 하지만, 포퓰리즘의 한 폐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바퀴 돌아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넘어온다. 이 두 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 아래는 기차역이다. 그러고보니 도시가 제법 비탈길 형태다. 그래서 서강대처럼 앞에서와 뒤에서 들어가는 입구의 층수가 다르다. 페스트가 도졌을 때, 확산을 막으려고 도시를 흙으로 묻어버려서 이렇게 된거라고 한다. 걷다보니 고등학교가 하나 보인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고등학교는 지하를 통해 시내까지 연결이 되어있다고 한다. 차도를 지나는데 로마시대의 도로도 아니고, 벽돌처럼 작은 돌들을 이어붙인 도로가 많다. 이것도 역시 개발 규제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가 다닐때 시끄럽기도 하고, 차가 덜컹거리는데 차를 타고 있지 않은 나도 그 승차감이 느껴질 정도다.
Royal Mile. 홀리우드 궁에서 에딘버러 캐슬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1마일의 도로다. 도로 중간중간 새 건물들도 보이나 과거의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심지어 스타벅스 간판마저 검정색이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에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상들이 많이 있다.(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등) 흄 동상의 발가락을 만지면 똑똑해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살펴보니 엄지발가락이 반들반들해져있다. 나도 좀 똑똑해지려나 싶어서 사진 한장! 스코틀랜드에서는 '독립'이 또 하나의 큰 이슈라고 한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자체의 산업이 부족해서 반대하는 자들도 많다고 한다. 독립이 큰 이슈라 그런지 스코틀랜드 국기가 종종 보인다. 98 프랑스 월드컵 때 잡지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다. 도로를 걷는 도중 '존 녹스'의 생가가 나온다. 장로교의 본산인 스코틀랜드. 비록 주일 예배당에 가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만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로교가 강세라고 한다. 장로교도는 아니었지만, J.C. 라일이 영국 교회를 회고하며 안타까워한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모습을 조국교회가 뒤잇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안타까울 따름이다. 에딘버러 캐슬에 도착했다.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포문을 보니 전쟁이라도 치를것만 같다. 물론 중세 전투 방식으로.
성욱이가 준비한 닭볶음탕, 고추장 돼지볶음, 크리스마스 푸딩과 홍차. 그리고 성욱이 여자친구분이 준비한 케잌까지. 잔잔히 들려오는 캐롤과 은은히 비치는 노란 불빛. 처음 보는 분들이 많았지만, 모두 그리스도 안의 가족이었기에 너무도 좋은 시간이었다. 집집마다 푸딩에 위스키를 붓고 불을 붙인다고 한다. 그런데 잘 붙지 않아 성욱이가 아쉬워했다. 푸딩이 맛없음에도 그 분위기 때문에 준비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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