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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11.02.14-18] 내일로 여행

이동코스 : 부산 → 안동 → 영주 → 제천 → 대전 → 전주 → 순천 → 하동 → 부산

준비물 : 여행 계획표, 수첩과 펜, 안대, 무릎담요, 페브리즈, 세면도구, 샘플 화장품, 손수건, 속옷 여벌, 비닐봉지, 물티슈, 휴지, 모자, 장갑, 여벌옷 1벌, 충전기, 디카, 물통, 우산, 시집, mp3

- 여행 계획표를 짤 때, 지도를 조금이라도 넣어서 다행이었다. 다음엔 지도를 꼭 챙기자! 그리고 삼각대도 들고 갈 걸 하는 아쉬움...

잠시 익숙한 공간을 떠난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거창하게 여행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여행이 무엇인지도, 여행을 왜 하는지도 모르기에……. 다만 잠깐의 일탈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 기억의 실타래를 쭉 펼쳐보고 싶다.


#1일차(14. 월) : 안동
‘다음날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과 함께 전날 밤 짐을 쌌다. 새벽 5시 30분. 눈은 떴지만 여전히 몸은 무겁다. ‘7시 6분에 출발하는 기차니까 집에서 6시 20분에 출발하면 되겠고, 그렇다면 조금 더 자도 되겠네…….’ 라는 자기합리화 속에 다시 눈을 붙인다. 그러나 15분 뒤 엄마가 다시 나를 깨워서 일어나게 되고 부랴부랴 준비한다. 대강 씻고 밥 먹고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타니 6시 20분. 그러나 ‘혹시나’ 라는 생각에 차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 못한다.(해운대역은 간이역이라 이번 기차를 놓치게 되면 다음 기차까지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 다행히 해운대역에는 6시 55분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고보니 눈이 많이 내린다.
심지어 부산에도 눈이 쌓일 만큼…….
눈을 보면 군대에서 눈 치운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힘들긴 했지만 모두 함께 한다는 연대감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보면 서로 상충되는 이러한 기억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눈은 비와는 또 다른 포근함과 낭만을 선사한다.
경부선으로 서울과 부산을 수없이 오갔지만 오늘 기차를 타는 것은 색다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작은 역에서 기차를 타는 것도 8년만이다. 중3때 동래역에서 경주로 소풍 가던 때가 벌써 8년 전 얘기니……. 간이역에는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느낄 수 없는 정이 있다. 조그만 대합실과 플랫폼에는 그 훈훈함이 넘쳐흐른다.
기차를 타는 그 순간까지 너무 떨린다. 어제 느꼈던 그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긴장이 나를 짓누른다. 이런 여행은 처음인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수없는 내일러들을 보면서 마음을 조금 추스른다.
해운대역에서 송정역까지 기차를 타고가면서 펼쳐지는 해안변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잠시, 너무도 피곤해서 ‘내가 앉은 자리에 누군가 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도 곯아떨어진다. 한 두어 시간쯤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하얗게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말 힘들텐데……. 기차도 눈 때문에 연착한다. 그래서 나도 10시 44분에 안동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예정 되어있었는데 무려 25분이나 늦게 하차했다. 평소 서울~부산은 KTX로 5분만 늦어져도 짜증이 치밀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여행의 한 가지 의미를 깨우친다. 그것은 삶의 속도에 치인 마음을 누그러 뜨려주는 것이라는…….
그런데,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고 전화하려는 찰나, 나는 핸드폰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어디선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집에서 가져오지 않은 것일까 궁금하여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집으로 전화했더니, 역시나. 너무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 침대 머리맡에 핸드폰을 두고 왔던 것이다.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고3 때도 핸드폰 없이 살았고, 여행 오기 직전의 2년도 핸드폰 없이 잘 살았는데, 뭔 대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다시 갈 길을 찾아 떠난다.
기차가 연착했지만 11시 20분에 하회마을로 가는 46번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탈 수 있었다. 첫 여행지라 떨린다. 막상 내리고 보니 별 것 없긴 했지만...(너무 경주를 많이 가 본 폐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하회마을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낙동강을 먼저 찾는다. 부산의 젖줄이라 불리는 낙동강. 내 고장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반가운 그 이름. 눈 내리는 공간 위에 펼쳐진 낙동강은 내 숨통을 탁 트이게 한다. 내 눈앞에 드러난 낙동강의 정경은 마치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맞이하는 기분과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 정경은 사실 경주 양동마을에서도 봤었고……. 비록 하회마을은 처음 와보지만 수없이 많이 마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마을 입구에 전시된 하회탈의 모습은 그러한 익숙함 뒤에 숨겨진 삶의 해학을 느끼게 한다.
계속 마을로 향하면서 나는 특별한 감정은 느끼지 못한 채 계속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번뜩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가, 아니면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하는가? 잠시 사진기를 내려두고 마을을 둘러본다. 나는 마을을 느끼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며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마을의 집들은 사실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격자모양의 반듯한 길 대신에 공간을 그려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이 마을의 또 다른 묘미였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가끔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하며 LP를 듣기도 하고, 예쁜 종이에 직접 손으로 글을 써가기도 한다. 옛 감정을 일깨우기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지닌 또 하나의 복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강 또한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서울의 한강과는 달리 이것은 자연 그 자체였다. 마을과 강, 그리고 부용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한편의 그림을 이루었다.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람 이전에 자연이 존재한다. 사람이 그 공간에 들어설 때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누군가는 그 공간을 자기에게 편하게 개조하고, 누군가는 그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우리의 선조들은 어우러져 살아가기를 택했다. 과연 그것이 자연을 개조할 능력이 없어서였을까? 만약 개조할 생각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것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다는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기에 건물이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마을이라고 하면 집들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의식주가 해결이 된다고 모든 것이 끝마칠까? 인간은 욕망을 알며 쾌락을 즐긴다. 그네와 널뛰기, 투호와 같은 놀이를 위한 공간과 생각이 만난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편리성 너머의 자연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마을에 있는 교회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뛰어 들어간다. 교회는 크리스찬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뿌리와는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하회마을이라는 공간 속에서 잘 어우러져 존재하는 하회교회의 모습은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병산서원으로 걸어간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2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 감상하고 싶지 않아서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4km라고는 하지만 약간 산길을 넘어가야 하기에 생각보다는 힘든 거리다. 게다가 이정표가 제대로 없다보니 길을 잘 못 들어가 나무를 헤치며 나가야 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만난 병산서원은 어찌나 반갑던지.
서원에서는 건축 구조를 보았다. 기둥과 보. 자연 그대로 이용한 해학이 아름답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를 끼워서 연결하는 우리의 전통 건축 기법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서원과 자연의 조화도.
다시 46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아저씨와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 아저씨는 “내가 미쳤지. 눈 와서 길도 미끄러운데 내가 여기를 왜 들어와가꼬... 동료들한테 고생했다고 말하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병신 취급을 할꺼고. 하이고 내가 미쳤지...” 한탄을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저씨가 여기까지 오셨기에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우리의 편의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그 사실을 당연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지.
저녁은 안동역 바로 옆에 있는 ‘일직 식당’에서 간고등어 정식을 먹었다. 집에서 먹은 간고등어와 별 다를 바 없어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리고 저녁에 돌아다닌 안동 시내. 안동시장의 떡볶이 골목은 명성에 비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 다만 푸짐한 양만큼은 최고다. 그리고 사람들이 극찬을 하던 월령교도 뭐 그닥. 다만 안동이라는 마을이 나지막한 언덕과 굽어 흐르는 낙동강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2일차(15. 화) : 영주
어제 저녁 너무 힘들었던 탓에 씻고 빨리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시간은 5시 30분! 나도 이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일까? 물론 혹시라도 늦게 일어날까봐 계속 뒤척거리며 자다깨다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빨리 씻고 김밥 한 줄을 사들고 역으로 달려나간다. 영주로 가는 7시 기차를 타기 위해서. 원래 오늘 대전에 가서 일훈이 형과 진철이 형을 만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졸업식이라 서울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일 만나기로 하고, 나는 계획을 어떻게 수정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영주를 빨리 구경했다가 전주로 이동하고, 그날 아침에 전주 구경을 했다가 대전으로 다시 올라가서 진철이 형을 만난 다음에 순천에 가서 시티투어를 즐겨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영주로 이동 한다.
영주까지는 기차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역에 도착한 후 부석사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간다. 안동에서는 역 바로 앞에 버스가 있었는데 영주는 그러지 않아 주민 분들께 길을 물어가며 영주여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55번 버스를 타고 8시 30분에 부석사로 향한다.
예전에는 옛날 건축은 모두 같아 보였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병산서원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병산서원이 전반적으로 담으로 공간을 구별하고 색을 절제하면서 선비의 완고함과 검소함이 드러낸다면 부석사는 화려한 색감으로 꾸밈과 동시에 길이라는 공간을 강조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바로 불교에서의 해탈은 윤회사상의 고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벗어난다는 것은 아집을 버리는 일이고 그것은 길과 연결된다. 유불교의 사상적 차이가 이러한 세세한 면에도 영향을 끼치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부석사가 길을 강조한 것은 알겠으나 지나치게 늘어뜨려 뭔가 허전한 느낌도 없잖아 있다. 그러면서 건축을 자연 속에 숨긴다. 자연 속에 숨긴다는 표현보다는 자연과 하나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라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나는 일주문의 기둥을 올려다본다. 색도 색이지만 화려하게 장식된 보의 모습이 절제된 병산서원의 보와 대비된다. 병산서원이 도리스식이라면 부석사는 이오니아식 건축 양식에 가까운 것 같다.
입구로 들어가면 우리나라 어느 사찰에나 존재하는 이런 상들이 4개 놓여있다. 호국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 같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대칭을 이루지만 지형에 따라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늘어진 느낌이었지만 부석사 중심부로 들어왔을 때는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건축의 심미적 요소를 무시한 채 이루어진 일부 보수는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예를 들어 기와 밑에 슬레이트 판을 덧댄 것들...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이라고 외치면서 편의성만을 고려해서 이루어진 보수를 볼 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무량수전에 들어가기 전 안양루가 눈에 띈다. 사실 나는 저 유명한 무량수전보다 안양루가 더 좋았다. ‘루’는 자연과 공간을 구별하기 힘든 공간이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고대 그리스 건축도 포커스는 야외에 맞추어져 있다. 그들은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보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더 가치를 두었기에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열린 공간을 만들었으며 그 완성품이 누각이다. 누각에서 펼쳐진 모습이 너무 좋다. 자연과 하나 되는 그 공간. 그러면서 자연 속에 인간이 어우러져 있다는 증거로서의 공간.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나라 목재 건축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낸다는 무량수전! 베흘림기둥을 쳐다본다. 서양 건축에서는 착시를 교정하기 위해 기둥의 두께를 다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착시 현상 쯤은 알고 있다며 그 사실을 더욱 강조하듯 기둥을 만든다. 그러한 해학에는 완벽함에서 볼 수 없는 인간미가 있다. 어쩌면 무량수전의 베흘림 기둥이 그토록 찬사를 받는 이유도 그러한 골계미 때문은 아닐까?
부석사에서 내려와 ‘부석사 종점 식당’에서 산채정식을 먹었다. 사실 별로 점심 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하도 먹으라고 하시니 가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주문하고 나서는 그냥 산채비빔밥 시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물들은 그저 그랬다. 그러나 청국장만큼은 정말 맛있었다.
부석사에 오르기 전 버스 도착시간을 메모해 두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주머니가 다시 한 번 버스 시간을 알려주시며 기사분께 말씀 드렸으니 천천히 먹고 가라고 하셨다.
식사를 마친 후 11시 15분. 소수서원과 선비촌으로 가는 55번 버스에 탑승한다. 소수서원에서 내려 소수서원과 소수 박물관, 선비촌을 둘러본다. 나는 부석사에서 느껴지는 화려함보다 소수서원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갈함이 더 좋다. 강학당과 제향 건물은 화려한 색채로 꾸미기는 했으나 여전히 장식은 단순하다. 옛 선비들은 이곳에서 학문을 익히는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나도 공부하는 입장에서 즐거울 때도 있지만 그것의 고단함에 치일 때가 더 많다. 내가 정말로 즐겁게 공부하다가도 누군가에 의해 강요를 받으면 질리는게 사람의 심리니 말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달랐을 것이다. 이황 선생처럼 정말 학문을 위해 학문에 정진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개는 과거라는 고시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학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학문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수서원 뒤편의 소수 박물관을 한 번 둘러본 후 선비촌으로 넘어갔다. 소수박물관에서 한 번 탁본을 해보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서 놀랬다. 나는 탁본을 찍어내는 것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면 옛날에 책 한권을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것도 이해가 된다. 선비촌은 옛 선비들이 살았던 공간을 재구성한 공간이다. 그러니 조금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민속촌이라고 하면 되려나? 아무래도 재구성한 공간이다 보니 하회마을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위적인 모습은 없잖아 느꼈지만...
다시 27번 버스를 타고 영주여객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5분이다. 일단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간다. 원래는 전주로 갈 계획이었으나 전주에서 구경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너무도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일단 제천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고자 한다.

제천에 도착하니 4시 45분. 일단 PC방으로 가서 검색을 하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한다. 우선 내일 저녁에 대전에 간다면 순천 시티투어를 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PC방에 있는 어떤 아이의 핸드폰을 잠시 빌려서 순천 시티투어를 취소했다. 일단 순천을 여행지에서 빼고 보니 오늘 내일은 제천에서 구경을 하다가 대전으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무런 계획 없이, 관광 지도 하나를 구한 채 제천 여행을 마음 먹고 숙박지만 급하게 알아본다.
저녁 식사는 역전에서 가볍게 칼국수를 먹고 관광지도에 제천 제 1경이라 소개된 의림지로 가본다. 그런데 뭐... 그냥 커다란 저수지일 뿐이었다. 너무 마음만 앞선 것이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터벅터벅 걸어 찜질방으로 향한다.


#3일차(16. 수) : 제천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역무소에 짐을 맡긴다. 그리고 청풍으로 이동!
7시 40분에 버스를 타고 8시 10분에 도착한다. 계획에 없던 곳이고, 관광 지도 하나만 의지한 채 하는 여행이라 감으로 청풍면 어딘가에서 하차했다. 버스에 타기 전 샀던 김밥 1줄을 처량하게 먹으면서 배회한다. 걸어가는 길 옆으로 넓게 펼쳐진 청풍호. 눈에 뒤덮인 그 광경은 웅장하다. 안동에서 봤던 낙동강이 아기자기하면서 인간과 친근한 강이었다면 이곳은 높은 산과 어우러져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청풍 문화재 단지. 사실 여행을 왔으니 도착한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둘러보아야 하나, 3일 째 비슷한 문화 유적지를 관람하다보니 사실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또 똑같은 것을 구경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둘러본다.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들도 당연히 있지만 그보다는 ‘익숙함’이라는 무서운 감정이 나를 억눌러 여행의 느낌을 한껏 살리지 못했다. 그나마 볼만 했던 것은 연리지(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 진한 부부애를 상징한다고 한다.)를 비롯한 독특한 자연의 모습이다.
단지 내에 있는 SBS 드라마 촬영장으로 이동하는데, 왜 이런 것을 구경해야 되는지 모를 지경이다. 못으로 대강 박은 것도 다 보이고, 기둥도 대강 박아 두고, 건물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다. 드라마를 찍기 위한 세트장이라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단지를 다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수몰 전시관에 들렀다. 그제야 나는 이 지역이 충주댐을 건설하며 수몰된 지역임을 알게 되고, 그곳의 문화재들을 긁어모아 이 곳에 모아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며 왜 수없이 많은 문학에서 강을 죽음과 결부시키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아픔을 나는 볼 줄 알았는가?
단지를 나와서 단지 바로 옆에 있는 염색 갤러리로 갔는데 휴업이다. 그리고 청풍랜드에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동절기 휴무다. 다시 제천역으로 돌아갈까 싶다가도 너무 억울하고. 일단 근처에서 식사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풍랜드 옆 관광 안내소에 들어가 물어봤더니 문화재 단지 근처에나 식당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계획없이 시작한 여행이지만 왜 이리 꼬이는지……. 식당을 찾아 축 쳐진 어깨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주민 한 분이 차를 세워 태워주신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아주머니께서는 내게 어디로 갈 계획이냐고 물으시기에 여행 중인데 일단 근처 식당에서 먼저 점심을 해결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께서는 문화재 단지는 들러보았냐고 물어보신다. 아까 거기 갔다가 되돌아 오는 길이라 말하기 부끄러워 예전에 갔던 곳이라 다시 들를 생각은 없다고 둘러댔다. 식당이 많은 곳에 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곤 아무 곳에 가서 일단 식사를 해결한다.
이제 뭐 할까 고민하던 중 근처 ‘청풍명월 전시관’이라는 곳이 있기에 그냥 아무런 기대없이 들러본다.
그곳은 수석분경을 전시하는 곳이다. 이런건 많이 보긴 했는데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난 붙이기(10분) 만원
화분 만들기(30분) 3만원
수석분경 만들기(1시간) 5만원
벽면에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나열되어 있다. 어차피 다음 버스 오려면 1시간 조금 넘게 남았는데 여기서 체험이나 해보면서 아저씨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자 싶어 체험에 대해 물어보니, 아저씨는 장황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그런데 솔직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아저씨께 화분 만들기랑 수석분경 만들기랑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어보니 장황하게 설명을 하시더니 할거면 수석분경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하신다. 당연히 돈 버는 입장에서는 비싼게 좋겠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체험해보자는 생각에 한 번 해본다.
수석은 준보석으로 모스 경도로 3~5정도에 해당하는 돌이다. 표면의 모양과 색감에 따라 청석, 오석(검은색), 초코석, 옥석, 미석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한다. 수석분경이란 자연석으로 존재하는 수석을 가지고 또 다른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 하는 것이다. 축경(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축소해서 표현한 것)과 약경(무언가를 대략적으로 형상화해서 표현한 것)이 있는데 자연석으로서의 수석이 질리지 않는 까닭은 약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석분경으로 표현할 때도 축경과 약경을 모두 표현할 수 있으나 약경으로 표현할 때 그것을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감상할 때는 수석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를 수석에 투영시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 같다.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이미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수석분경을 만들기 위해 내경은 어떠해야하며 어떻게 구성이 이루어져야하는지 장황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는 실습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예술가로 자처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시는 듯 했다. 나는 실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짜증도 났다. 하지만 하다 보니 그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다. 다 완성을 시키고 보니 뿌듯하다. 그리고 다시 전시장을 둘러보니, 각 작품들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무 신비로운 순간이다.
그러고보니 벌써 시간은 훌쩍 지나 5시 30분이다. 원래 1시간만 하려했는데 4시간이나 있었던 것이다. 빨리 대전으로 가야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래서 얼른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타고 제천역으로 돌아와 기차에 탑승하니 그 시간이 7시다. 아! 제천역 내에 있는 우리차 다방이 그렇게 좋다던데. 실제로 먹어보니 찻잎을 우려내서 먹는 것이 아니라 티백으로 먹는 것이라 굉장히 실망했다.
그러고보니 불평은 가장 많았던 여행코스였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다만 여름에 왔더라면 번지점프도 하고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것보다 새로운 세계를 체험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대전에는 9시 30분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일훈이형과 진철이형을 만나기 위해 카이스트로 간다.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운동장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 힘들게 찾아 일훈이형과 만나고 우리는 치킨을 사서 기숙사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같이 야식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행을 통해 잠시 현실을 떠나 있었는데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나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교회라는 공간도 절과 달리 도심지에 있는 까닭은 인간의 삶이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이 현실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반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형이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현실과 내가 떨어질 수 없다면 현실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실을 이끌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즐겁게 얘기를 하다보니 진철이형도 들어왔다. 진철이형이 나한테 여행하면서 사람들 많이 만났냐고 묻는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그러며 여행은 친구 많이 만나고 노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아직 나는 여행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다 다시 여행하기 전에 들었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여행은 왜 하는 것이며 무엇을 하는 것인가?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여행하기 전에 떠올랐던 질문이 아니라 최근 2년간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주된 화두였다. 그래서 김훈의 ‘자전거 여행’도 읽었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도 읽었으며,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도 읽어 보았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내가 여행을 시작하게 되니, 여행을 통해 차츰 그 의미를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이래저래 얘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새벽 2시가 다되어가고 있다.


#4일차(17. 목) : 전주
여행을 계속 다니다보니 일찍 일어나는게 습관이 되어 7시가 조금 넘었더니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래서 씻고 다시 짐을 싸고 성경 말씀을 묵상한다. 그리고 8시 반이 되자 두 형들도 일어나, 같이 밥 먹으러 갔다.
밥을 먹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며 혹시 서강대 다니지 않냐고 물어본다. 익숙한 얼굴이긴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같이 밥을 먹는데 알고 보니, 1학년 때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프로젝트 하나를 같이 했던 동기였다. 알아채지 못한 사실이 너무도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반가웠다. 그 친구는 반수를 해서 카이스트에 08학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 참 좁다. 이렇게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밥을 다 먹고 나는 다시 여행을 하러 떠나고 일훈이형과 진철이형은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며 헤어진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기약과 함께…….
카이스트에서 월평까지 가는 길. 여태껏 만난 여행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대도시의 느낌이다. 물론 부산과 서울, 대전. 각기 다른 모습이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포룸처럼 획일화 된 느낌이다. 잘 닦여진 길. 하회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비록 그 천진난만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 곳에는 편의성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것일까? 인간은 서로 상충되는 가치를 모두 추구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그러한 인간의 모순된 욕망에 대해 통찰한 곰브로비치에게 찬사를 보낼 뿐이다. 이러한 모순된 욕망은 인간의 한계이리라.
이제 내가 이동할 곳은 전주다. 서대전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이동하는 전주. 그러고 보면 오늘이 여행 4일차이지만 매번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떨린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짐은 물품 보관함에 맡기고 전주 한옥마을로 간다.
일단 도착하니 1시 반이다. 배도 출출하니 왱이집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너무 맛있어서 밥을 두 공기나 먹었는데 너무 배가 불러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똑같은 건물로 이루어져있는데 어떤 지역은 촌스러워 보이고 어떤 지역은 세련돼 보인다. 왜 그럴까? 사실 전주만 하더라도 제법 큰 도시인데도 대전이 주는 느낌과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가 건축 재료가 도시 이미지 형성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나는 전동성당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정말 대단한 건물이라 입이 쩍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건물 외관이야 사진을 찍어서 보여줄 수 있지만 더 대단한 것은 건물 내부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한탄스러울 뿐.
외관부터 보면 양 옆에 기둥을 받친 아치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아치를 올리고 단조로움을 깨고자 원형 스테인드글라스를 두었다. 그리고 비례를 맞추기 위해 양 옆에 다시 또다른 구조물을 두어 입구에 아치 3개가 맞추어 진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례를 염두에 두어 확장을 하고 꼭대기에는 두오모를 둔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보다 더 화려한 것은 내부였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대강 그림으로 그렸는데, 안 그래도 못그리는 그림, 스캔으로 뜨다보니 더 엉망이다. 일단 입구로 들어가면 공간 자체가 아치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같은 중심을 지닌 아치구조 2개로 이루어진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강대상은 아치형을 살짝 가리게 된다. 그리고 천장은 볼트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내부의 수많은 열주들은 다시 아치형 구조로 쌓아 올라가는데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 1층에 존재하는 기둥은 기단과 entablature를 모두 지니고 있으며 그 사이에 보충재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위로 2층을 쌓는데 다시 아치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비례를 맞추기 위해 작은 아치 3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2층의 높이는 낮아져서 훨씬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그 위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이것조차 아치 모양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1층 각 기둥사이에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꾸며놨으며 역시 아치모양으로 만들어 두었다.
각 창문 사이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주제로 성화들을 그려놓았다. 물론 성화 자체에 반대하는 나지만 저 정도면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거 같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강대상 옆 천사상이다. 인간의 지식으로 괴상망측하게 천사를 형상화하여 우상을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난 후 성당을 나오고 보니 너무도 그러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성당 뒤쪽에 있는 피에타상, 그리고 성모상으로 보이는데 그 위에 가시관을 씌운 것이라든지…….
사무엘상 4장에 보면 법궤를 우상시한 이스라엘 민족이 나온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법궤를 내세운다. 그러하기에 블레셋 군대에게 진 것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뭐라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이 우상이기에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게다가 하이라이트는 본당사무실에 ‘성물판매’라고 적힌 표지다. 무언가를 형상화하고 우상시하는 것은 인간의 죄된 본성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어떤 형상화된 것을 섬기는 것이 아닌데 구교는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 들른 경기전. 여태껏 두 서원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조선의 건축은 담으로 이루어져있다. 예전에 로마와 고대 중국을 비교하며 길과 만리장성을 비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조선의 폐쇄적인 면모는 그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원을 봤을 때는 개개인의 공간이 보장된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것이 어떤 선비의 완고함과 이어져서 좋았다. 그러나 경기전과 같은 공공건물을 보고나서는 다른 기분이다. 그곳에는 광장이 없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준이 남한의 어떤 면모에 회의를 느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낀다.
교동아트센터에 들렀을 때 별 감정은 없었다. 딱히 뛰어난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나의 미술을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내 한복판에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부럽다.
걷다보니 최명희 문학관이 나타난다. 난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최명희라는 작가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하지만 먼저 이 공간에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은 돌려읽을 수 있도록 책장을 두어 배려했다는 사실이다. 교동아트센터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전주시민들은 상당히 예술과 접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모든 작품을 일일이 수기로 작성했다는 작가. 너무도 존경스럽다. 혼불 원고지의 1/3만 전시를 해 두었는데 그 높이가 얼추 내 가슴팍까지 온다. 글자마다 그녀의 혼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 성실함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말에는 정령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하지요. 생각해보면 저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에 말의 씨를 뿌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씨를 뿌려야 할까. 그것은 항상 매혹과 고통으로 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고 모국어는 모국의 혼이기 때문에 저는 제가 오랜 세월 써오고 있는 소설 ‘혼불’에다가 시대의 물살에 떠내려가는 쭉정이가 아니라 진정한 불빛 같은 알맹이를 담고 있는 말의 씨를 심고 싶었습니다. - 1998. 8회 호암상 수상소감 中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지게 갈아서 손 끝에 모으고 생애는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원고지 한 칸 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나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남들은 한번 쓰고 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일필휘지가 갖고 있는, 한 순간에 우주를 꿰뚫는, 정곡을 찌르는 강력한 힘도 좋지만 천필만필이 주는, 다듬어진 힘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일필휘지가 천필만필을 겪으면서 애초보다 더 편안하고 표가 안나는 것이다. 그러나 고칠 때마다 오히려 때가 묻고 삐걱거린다면 차라리 고치지 않는게 더 낳다.
마치 15년 전에 떨어져 나간 손가락을 주어다가 접합 수술을 하는데 하나도 표 안나고 잘 붙도록 매 순간 기도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인다.
최명희씨가 직접 쓴, 또는 말한 내용이다. 작가로서의 겸손함과 끊임없는 수양이 돋보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문학관을 찬찬히 둘러보며 나의 가벼운 글쓰기를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제 이곳저곳 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물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마을을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한옥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면 조금 더 지자체에서 신경을 써주어 가옥들을 예쁘게 꾸몄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제 순천에 도착하고 보니 시간은 9시. 게다가 근처에 찜질방도 공사 중이라 문이 닫혀있다. 조금 멀리 가면 있다고는 하는데 나흘간의 여행에 지쳐 오늘은 가까운 모텔에서 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5일차(18. 금) : 하동
순천에서 하동으로 간다.. 순천도 무지 여행하고 싶은 곳이었지만 다음에 여수, 고흥, 장흥 등 둘러보고 싶은 곳이 또 있어 다음을 기약한 채 이동한다.
하동역에 도착하고 보니 너무도 익숙한 읍내 풍경이다. 어릴 적 뛰놀던 사천읍 내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모습이다. 물론 경치는 아름답지만 휑한 거리에 놓여있는 건물들의 모습은 그다지 빼어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추억 때문이다. 대전의 거리와 하회마을 거리를 보며 그 상충된 이미지 속에 모순된 욕망을 느끼며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었다. 물론 우리는 고민을 통해 더 나은 길로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과도기적인 상태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 그것이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과거 수많은 유적들도 빼어난 것이 있고 조금 덜한 것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으면 섬진강이 그립다. 사실 하동에서 오래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섬진강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쌍계사, 화개장터는 물론이고 매화마을도 갈 수 없다. 그렇지만 섬진강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섬진강변으로 이동하니 송림이 나온다. 소나무 숲. 노송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광경은 아름답다.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섬진강과 어우러져 풍치를 더한다. 낙동강도 봤고 충주호도 봤지만 내 가슴 속에 가장 벅차오르는 곳은 섬진강이다. 나는 바다보다 강이 좋다. 바다처럼 넓지는 않지만 산과 땅과 어우러져 인간과 함께하는 강이 나는 좋다. 바다처럼 탁 트여있지는 않지만 가늠할 수 없는 그 길이와 눈에 보이는 강 저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애틋하다. 그리고 나는 강의 생명력이 좋다. 섬진강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 철새들. 그들의 힘찬 날개짓을 통해 나는 강의 생명력을 느낀다.
다른 시선에서 보고 싶어서 하동공원 전망대로 올라간다. 가는 길에 최참판댁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아! 이곳은 토지의 공간이었다! 비록 아름다운 자연이지만 또한 치열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기차가 한 대 지나간다. 그러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떠오른다. 설경구는 “나 다시 돌아갈래!” 라고 외치며 달리는 기차와 한 몸이 된다. 그 배경도 강이었다. 강은 아름답지만 인간사가 묻어있기에 또한 처연하기도 하다. 청풍호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수몰 지역의 이재민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이 지닌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이제 4박 5일간의 방랑은 막을 내린다. 나는 수없이 돌아다녔지만 여행의 의미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메마른 감성을 다시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을 느낄 뿐이다. 아직도 여행을 왜 해야 하는지 나는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알지 못하면서도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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