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마지막 책조차 예수님이 탄생하기 500년도 더 전에 쓰여졌다. 그러나 이 모든 성경을 한가지로 엮어 주는 중요한 공통된 맥락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이미 다 기록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역사 그 자체다. 모든 역사는 예수님에 관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약에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특별히 인물에 의해서, 때로는 여러가지 상징을 통해서, 예언자들에 의해서, 여호와의 사자로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구약을 읽으며 예수님을 봐야 한다. 이러한 메시아의 예언을 봤지만 깨닫지 못한 유대인과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그 영적인 눈이 필요하다.
1)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 예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그 없이는 지은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요1:1-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이 우주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존재하시며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원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분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인간을 만드셨다. 우리의 첫 조상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의 명을 거역하고 자유 의지적으로 죄를 택했다. 그 후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언제나 거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인류를 찾아오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다. 또한 인간을 재창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오직 그분의 성령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재창조하신다.(요3:16;요1:14)
2) 이 세상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1-5)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2:28-3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4,5,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3)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4-15)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19-21)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갈4:4)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단 한가지의 계명,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 것만을 요구하셨다.(창2:16-17) 그 결과 당장 육체적으로 죽지는 않았으나, 영적으로 죽었다. 더이상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게 되었다. 부끄러웠고, 이를 감추려 했다. 그 때 하나님은 이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유혹한 뱀을 저주하시고, 15절의 약속을 주신다. 여자를 통해 죄가 세상에 왔기에 그 죄의 해결 역시 여자를 통해 들어와야 한다. '여자의 후손'의 '여자'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메시아가 오셨다. 이스라엘에 대한 애굽왕 바로의 잔혹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탄과 '그 여자'사이의 원수 관계는 계속 진행 됐다. 그러다가 궁극적인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처녀에게 잉태되셔서 오셨다. 그렇다면 왜 처녀여야 했는가?
ⓐ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태어나야만 했으나, 남녀 관계를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 스르는 죄성(원죄)에 오염되어서는 안되셨다.(히2:14)
ⓑ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완전한 사람이셨다. 그의 진정한 아버지는 영원한 하늘 아버지로서 예수님은 성령에 따라 처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셨다.
뱀의 후손은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이다.(요일2:22) 예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를 십자가에서 이루셨다.(사53:3)
4) 둘째 아담 예수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롬5:14-16)
아담이 그의 창조주께 반역했을 때 모든 세계가 저주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창3:17-19) 이는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나도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이에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은 모든 인류의 대표자이며 인류 공동체의 연대 대표자이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죄로 비참하게 타락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다 지키시고, 아무런 죄를 짓지 않으셨다. 둘째 아담으로서 새 인류의 연대 대표자가 되셨다. 새 인류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5) 은혜의 보호막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레9:7)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1-14)
지금도 모든 인간은 종교, 의심, 자선, 금욕 등의 각종 방법으로, 창조주로부터 자신의 수치를 감추려고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시기 위해 그들의 죄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동물을 희생하셨다. 동물은 죽어야만 했다. 우리의 죄를 가리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필요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이기에(사64:6) 새로운 의의 옷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희생양으로 오실 메시아를 본문에서 예표하고 있다. 광야 성막에서 드려졌던 동물은 피를 완전하게 흘리고 번제단의 불로 완전히 타 버렸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철저하게 희생될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이다.
6) 우리의 생명나무이신 예수님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3-24)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
생명나무에 관한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창3:9,3:22,3:24;잠3:18,11:30,13:12,15:4;계2:7,22:2,22:14,22:19) 에덴 동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대신 저주를 담당하셔서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셨다. 첫 번째 생명나무는 하나님에 의하여 에덴에 심겼으나 두번째 생명나무는 사람의 손에 의해 갈보리 십자가 나무로 심어졌다. 첫째 나무는 보기에 탐스러웠으나 둘째 나무는 불쾌하고 끔찍한 나무였다. 하나님은 에덴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슴하셨으나 사탄은 그의 간교함으로 사람들로 먹게 했다. 하나님은 갈보리의 나무의 열매를 먹도로 부르시지만 사탄은 모든 힘을 동원해 그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그 열매를 먹는 순간 죄와 죽음을 가져왔으나 둘째 나무의 열매는 그 열매를 먹는 자에게 생명과 구원을 가져온다. 두 나무는 모두 동산에 심겨있었다.(에덴 동산, 갈보리) 또한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은 모두 동산에서 죽었다. 아담은 영적으로 죽어 모든 사람에게 육체적 죽음을 안겨 주었고,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돌아가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셨다. 두 나무는 모두 '중앙에' 있었다. 첫째 나무는 죄의 사악함을, 둘째 나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수님 재림 이후 에덴 중앙에 있던 생명 나무를 자유롭게 영원히 먹게 될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나무'가 되신다.
7)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님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6:5-8, 13-14)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시46:1-3)
성경에는 세 개의 방주가 있다. 홍수에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한 노아의 방주,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시고 다니던 언약궤(the Ark of the Covenant : 언약의 방주), 나일 강의 갈대숲에서 안전하게 떠 있었던 모세의 방주(출2:3)이다. 이 방주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피난처라는 사실이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God-Man)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방주로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수천년 전부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어 있었다.(미5:2) 노아가 스스로 방주의 필요성을 알 수 없던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람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주는 잘린 잣나무(Gopher wood)로 만들어진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끊어질 것이다.(단9:26;사53:2) 노아의 방주가 하나님의 심판의 피난처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다가올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신다.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로 초청된 것처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하신다.(마11:28) 방주는 안전한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원토록 안전하다. 예수님도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18:9)라고 기도하신 바를 통해 알 수 있다.
방주의 문이 하나였듯, 구원의 문도 하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8)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18-20)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7:1-3)
기름부음 받은 자의 세가지 직분을 살펴보자. 선지자는 하나님 대신 백성을 향하여 말하는 직분, 제사장은 제물을 통하여 주의 백성의 죄악을 하나님께 중재하는 직분, 왕은 백성의 필요를 채우며 그들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직분이다. 이 세 직분 중 두 직분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인물은 모세와 멜기세덱(시110) 밖에 없다.
히브리서에서 멜기세덱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증언한다. 아브라함은 일체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린 사실을 통해 그가 멜기세덱에게 순복했음을 알려준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축복받았음도 이를 확증한다. 더욱이 하나님에 의하여 레위 족속에게 주어진 제사장직도 멜기세덱에게 순복하고 있다. 아론으로부터 시작된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은 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순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제사장은 죄가 없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예수님이다.(히7:11-17)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이 온전하지 않기에,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대제사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우리의 위대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9) 언약을 지키시는 우리 예수님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15:7-12,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15:16서 분명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을 주려는 것과, 그의 자손들을 위한 약속의 땅을 줄 것이라는 약속도 그러했다. 고대 중동에서는 영주가 지방 관리들을 다스렸다. 지방 관리인들은 영주에게 충성하며 세금을 바쳤다. 이를 위해 관리인들은 충성을 맹세하는 예식을 치루었다. 동물들을 반으로 쪼개놓고 그 가운데 길을 만들어 지방 관리인은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걸어 지나간다. 충성하지 않는다면 이 동물들처럼 쪼개 죽어도 좋다는 의미다. 위의 구절에서 동물 사이로 지나가신 분은 하나님이다. 17절에 등장하는 타는 횃불은 신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피의 언약은 갈보리의 보혈을 예표한다. 십자가의 구속이 완성된 이후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인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옴으로 하늘의 별들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아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지나가실 때 아브라함은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구원은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다.
10) 언약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21:1-7)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0-11)
15장에서 약속하신 아기를 21장에서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약속의 아기가 있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 약속은 창3:15, 사9:6 등 반복적으로 예언되고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며 느낀 기쁨은 온 세상의 주의 백성이 누릴 기쁨을 예표하고 있다.
이삭의 탄생에 관한 약속이 주어질 때 하나님은 아브람을 'ㅎ' 발음을 추가한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바꾸었다. 히브리어에서 성령은 '루아흐'이다. 이 히브리 단어는 'ㅎ' 발음이 강조된다. '루아흐'라는 뜻은 바람 또는 영인데 이 단어를 발음할 때 입에서 바람이 나오거나 속의 영이 나오는 것 같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을 바람과 연결하셨다.(요3:8)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에 'ㅎ'발음이 추가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갔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약속의 아들 이삭은 성령의 역사에 따라 약속으로 태어나는 아기였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한다.
'아브람'은 아버지, '아브라함'은 '많은 자녀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직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이 이 이름을 얻은 후 동네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이 다 이루어지지 않은 오늘날의 성도들도 세상사람들로부터 이런 조롱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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