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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신사도운동 비판]17. 그리스도의 신부

 신사도운동은 유난히 신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신부라는 용어가 기독교의 용어와 같을까? 그들의 주장의 위험성은 다음과 같다.
1) 혼인잔치가 곧 가깝다고 하는 임박한 시한부 종말론이다.
2) 이것을 신비적인 연합적 개념, 즉 이단적인 신인합일론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3) 신사도운동을 주장하는 단체만이 신부가 된다는 선택적, 제한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를 근거로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열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들러리이다. 또한 그들은 기름을 성령으로 해석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다섯처녀는 성령을 사러 기름장사에게 갈 수 있었을까?
 본문에서 혼인잔치는 구원의 상징적인 개념이다. 본문은 예수의 재림에 대하여 미리 준비하라는 교훈일 뿐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본래의 메시지를 변질시키지 말자.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남자로, 교회를 아내로 비유하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비유한다. 다시 말하면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 즉 에클레시아(교회)가 곧 신부로 표현된 것이며 그래서 변절자나 배교자를 간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몸이 되시고 또한 신랑이 되신다. 이러한 표현은 교회와 예수의 관계를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비유적인 상징이다.(엡 5:22-25, 5:31)

연합의 개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 용어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라고 하여도 동일한 의미가 되며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유기체적인 연합'을 뜻하는 용어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많은 사람은 모두 한 인격체로 합일 되었을까? 아니면 몸이 되시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믿음으로 인한 유기체적인 영적 연합을 뜻한다고 해석하는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각 개인의 인격성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자들이 믿음 안에서의 영적 연합을 뜻하는 것이다.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 1:30)
 이 성경구절에서 빌립보 교인들과 바울이 인격적으로 합체했다는 뜻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상호내재(페레코레시스)는 인격적인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연결되는 유기체적인 연합을 뜻한다. 만약 전자로 해석을 하게된다면 삼위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정통신학적인 연합의 개념은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변화되어감에 있어 각자의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을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되지는 못하며 그리스도에게로 흡수되거나 우리의 개성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자신으로 남아서(고전 13:12)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요일 3:2) 그의 얼굴을 대하며 그에게 경배를 드리고 이마에 이름을 가지고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성품에 있어서는 서로 정확하게 같으면서도 독립적인 위격으로 남아 계셨던 것처럼 우리도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도 다른 은사들과 기능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있게 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되어갈 것이다.(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63쪽)

(1) 믿음 안에서
 고린도후서 12:2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라고 하면서 믿음의 동역자를 소개하고 있다. 칼뱅은 로마서 주석에서 이 용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바울의 말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을 에라스무스가 예수로 인하여라고 바꾼 것보다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말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촉되어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사상을 좀더 분명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용어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된 관계를 뜻한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우리가 아담 안에 있다는 표현은 우리가 아담과 동일한 한 인격체의 몸으로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대표성을 뜻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 되는 것이다.
 개혁신학자였던 워필드는 시너지즘(synerg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믿음의 본질이 이 시너지즘이며 언약의 상호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믿음 안에 있을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으며 그것이 믿음의 유기체적인 연합이라고 말한다.

(2)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갈 2:20)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다시 살리시고 (골 2: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골 3:1)

(3) 성령 안에서
 성령은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합하게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용어와 다른 뜻이라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동일한 성령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그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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