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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신사도운동 비판]3. 영적도해

(1) 일원론 Vs. 이원론
기독교 신앙은 일원론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일원론과 이원론이 어떻게 다른가 살펴보도록 하죠.
이원론은 쉽게 생각해서 스타워즈를 생각하면 됩니다. 제다이와 시스족. 선을 상징하는 제다이는 악을 상징하는 시스족과 싸우며 승리를 쟁취하지요. 선과 악은 원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 둘 간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이 이원론입니다. 옛날 조로아스터교가 이원론을 주장했지요.(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차라투스트라’ 역시 조로아스터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기독교에서 모든 것의 출발은 의 그 자체이신 하나님입니다. 사단은 영원 전부터 있던 근원적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천사)이었으나 교만함으로 타락한 것이지요. 즉 하나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은 어떻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불순종’이며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교만’이었죠.) 죄를 짓게 됩니다. 즉 악이라는 원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2) 영적도해란 무엇인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영역과 사단의 영역을 지도로 표시하여 그 지역을 다스리는 지역신들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의 문제점은
1) 극단적 세대주의적 이원론으로서 이 세상을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 구도로 본다는 것입니다.
2) 이단적인 귀신론의 사상입니다.(베뢰아의 견해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셔야 했는가?
그들은 그것이 인류의 죄를 사하는 대속의 개념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번의 견해에 대한 반박 : 물론 (1)번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었으나 조금 더 내용을 첨가하겠습니다. 욥기서에 보면 사단이 욥을 시험하지만 그것마저 하나님의 주권아래, 하나님의 허락 하에 가능했습니다. 즉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 구도? 이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악한 영의 행위에 대한 원인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2~15)

시험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녀에게 시험을 하는 것은 멸망을 당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며, 거듭난 성도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지 않습니다.(고전 10:13) 즉 피할 길을 마련하신다는 것이죠. 로마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난을 통해 인내를, 인내를 통해 연단을, 연단을 통해 소망을 품게 하는 것이라 변증합니다. 그러나 악인을 시험할 때에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입니다.

2)번의 견해에 대한 반박 : 구약시대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의 아내인 라헬이 가져왔던 드라빔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벨론, 블레셋 등 수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헛된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성경은 영적 전쟁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왕국간의 전쟁 너머, 즉 하늘 영역에서의 영적전쟁을 언급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5:9~12절에서는 군대 귀신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대 귀신을 쫓아 돼지에게 보냅니다. 그 돼지는 귀신들린자와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역을 관할하는 신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요? 즉 어느 지역의 장소, 그 공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 구원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유치한 무속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3)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신사도운동, 베뢰아의 귀신론 견해를 따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사단을 축출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에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말이죠.

(4) 신사도운동의 주장 : 영적도해를 통해 지역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1) 지상적 차원의 영적전투 : 개인 안에 역사하는 악령을 쫓아내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축사사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적전투를 말한다.
2) 주술적 차원의 영적전투 : 개인 안에 역사하는 악령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악령들, 예를들면 주술, 부두교, 동방종교들, 사단숭배,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등 기타 주술적인 행위를 통하여 역사하는 악령들과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3) 전략적 차원의 영적 전투 : 전체적인 지리적 영역이나 사회적, 문화적 집단을 악으로 속박하기 위하여 배치된 지역의 영들의 형태를 취하는 어두움의 정사와 권세들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싸우는 전투를 말한다. 이 땅을 다스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투가 있다면 바로 이 전략적 차원의 영적 전투이다.

그들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적도해, 축사, 땅밟기 기도, 대적기도, 선포기도 등은 모두 극단적세대주의 이원론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개념에 따르면 더 이상 복음을 전할 필요도, 회개, 신앙의 성숙도 필요 없이 지역 귀신을 축사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5) 땅밟기 운동
오직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으며 모든 저주를 풀 수 있습니다. 예수 외에 다른 중보자가 필요 없으며 은혜와 믿음 외에 다른 방법이 필요 없으며 성경 외에 다른 복음은 필요 없습니다.
땅밟기를 해야만 그 지역의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더 큰 소리로, 더 열심히 기도한다고 더 잘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그 지역에서 직접하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며 땅밟기를 해야 그 지역의 귀신을 쫓는다? 그것은 지역신이라는 샤머니즘적 요소를 도입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어리석은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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