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다녀올 수 있을까? 과연 성경에서 언급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여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체험 간증이 추가로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능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다.(딤후 3:15) 오히려 비성경적인 천국 지옥 간증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이단성)
예를 들면 신사도 운동에서 말하는 입신이라는 용어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입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성경적인 근거로 바울도 낙원을 다녀왔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고후 12:2-6)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두려워 낙원에 다녀온 것을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 제 삼자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다. 오늘날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이들의 간증은 대부분 비성경적이며 사람마다 다르다.
1)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을 염려하여 제 삼자의 입장으로 글을 기록하는 반면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이들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신의 체험을 말한다.
2)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것이 보편적인가?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 한다면 예수님과 같이 물위를 걷는 이들은 왜 등장하지 않는가? 에녹이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다는 것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는 뜻도 아니다.
3) 바울은 자신이 낙원을 간 것이 몸 안인지 몸 밖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간증을 하는 이들은 영혼이 몸에서 이탈되어 영혼만이 갔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알 수 없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유체이탈이라 단정하는가?
그렇다면 왜 바울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몰랐다고 말할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체험을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후 11장 23-25절에서 그는 거의 죽을 뻔한 많은 체험들을 말하며, 행 14:19에서 바울은 돌에 맞아서 죽은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적도 있다. 그러나 요즈음 입신을 주장하는 이들은 수십번을 습관처럼 쉽게 왔다갔다고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스웨덴보리의 경우도 그러하다.)
4) 바울은 그러한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요즈음 간증하는 이들은 성경의 내용과 달리 자유롭게 말을 하는 것일까?
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들의 경우 꿈을 꾸었다는 경험담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 체험이 모두 다르며 자신이 평소 갖고 있는 종교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6)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성경은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약 2:26)이라고 기록하며, 육신은 땅으로 돌아가지만 신(spirit)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성경은 기록한다.(욥 7:9-10, 히 9:27)
스데반도(행 7:59), 예수님도(눅 23:46), 야이로 회당장의 딸도(눅 8:55), 아나니아와 삽비라도(행 5:5, 5:10), 부자도(눅 12:20) 영혼이 몸을 빠져나갔다고 하면 그 몸은 죽은 시체이며, 성경은 단 한번도 사람이 죽지 않고 영혼과 몸이 분리된 경우를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의 경우도 그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몸 밖으로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고후 5:8-10, 빌 1:22-24)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개인의 비성경적이며 주관적인 간증을 통하여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속설에 미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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