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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신사도운동 비판]14. 임파테이션(Impartation)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임재하시며 온 세상에 충만하신 분으로서 그분의 뜻하시는대로 자유롭게 누구에게나 임하실 수 있다. 성령께서 어떤 사람이나 안수를 통하여 전이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수는 상징적이며 의식적인 방법으로 보아야 한다.

(1)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함이니 (롬 1:11)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to you some spiritual gift to make you strong (NIV)
이 구절을 공동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축복으로, 영어 성경은 gift로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은사라는 단어는 언제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 언급되는 방언, 예언 등의 영적 은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적, 정신적, 물질적인 선물, 은혜를 모두 포괄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여기서 은사를 방언, 예언등의 영적 은사로 해석을 할 수 없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라는 뜻이다.

(2) 행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1-12)
본문의 앞구절에 있는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시니라는 말에 주의하자. 바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하여 전이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행하게 하신 것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그 자체가 희한한 일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보편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바울은 단지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즉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다.
이것이 안수의 정의이다. 안수는 하나님의 기도이며 의식이며 상징적인 방법이며 그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도들의 능력으로 사도들의 손으로 안수하여 성령과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이단성을 드러낸다.

(3) 성경이 말하는 성령을 받는 방법은 ‘말씀’을 통한 것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 4:15)
과연 거듭나는 중생, 성령의 내주가 어떤 사람을 통하거나 어떤 인위적인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은 회개와 믿음을 통한 성령의 선물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4) 안수
안수라는 단어는 구약이나 신약 모두 손을 얹는 행위를 말한다. 비록 사람들이 손을 얹는 형식이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상징하는 하나의 의식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 안수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수라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많은 성경은 안수를 하면서 동시에 기도를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행 6:6)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3:3)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 19:6)
이는 안수라는 방법을 통하여 성령이 전이받는 것이 아니라, 안수를 할 때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한글번역성경은 성령이 내려오셨다고 번역하고 있다. 즉 손을 통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위로부터 오셨다는 것이다. 즉 안수는 하나의 의식이며 기도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오순절에는 안수를 통하여 이루어졌을까? 아무도 안수를 한 적이 없으며 오순절의 성령은 하늘로부터 성령께서 불의 혀와 같이 임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한 견해는 바로 시몬의 견해이다. 그는 사도들이 안수로 성령을 전이하는 것으로 알고 돈을 주고 그것을 사려고 하였다.(행 8:17-20) 오히려 사도들은 성령을 주는 것을 ‘하나님의 선물’(행 8:20)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며 그것을 돈을 주고 사려는 시몬을 핀잔한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성경은 희생제물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죄의 전가를 하고 있다. 과연 안수라는 의식이 죄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가? 죄사함은 죄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죄책을 묻지 않는 것이다. 즉 죄가 있지만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죄성이 없어져서 실제로 온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책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례의 경우를 보자. 세례라는 의식 자체가 어떤 효과나 능력이 있어서 죄사함을 하게 하거나 믿도록 하여 주거나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레를 받아야 하지만 그 세례는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안수도 세례와 같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의식으로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어떤 능력이나 성령의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기름부음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0)
신약에서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을 받은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서 공동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 성령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셔서 자신 안에 거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눅 4:18)
즉 기름 부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이나 능력은 안수나 매개체적인 물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임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이 사람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을 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며 그 통로는 말씀인 것이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번역하면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된 왕도 있었고, 선지자도 있었고, 제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직분을 모두 겸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없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크다는 세례 요한도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다.(요 1:20) 성경은 오직 예수만이 구약에서 예언된 그 그리스도이시며 기름부음 받은자, 즉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몇몇 이단들이 기름부음(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모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여도 믿디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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