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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신사도운동 비판]13. 중보기도

비록 중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고 하더라도 중보기도라는 용어가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볼 때 부정하거나 비판할 것은 없으며 그리스도인에게 중보기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에 신사도 운동이 사용하는 중보기도는 매우 비성경적이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신사도 운동이 주장하는 중보기도와 중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필요한 이유는 그 죄로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중보자가 있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가들은 지금도 중보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 오늘의 중보자들이 증거하듯이 중보 사역의 가장 큰 상급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중보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선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피터와그너, 방패기도, 30쪽)
물론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중재하는 중보자(제사장, 선지자, 사사, 예언자)가 있었다. 예를 들면 모세는 허락된다면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위탁하기도 하였다.(출 32:30-34) 이사야 역시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요청하였다.(사 6장)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임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 12:24)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9:15)
신사도 운동은 자신들이 사도이며 선지자라고 주장하는데 즉 자신들을 예수의 위치로 올려 신격화 하는 주장이다. 누구든지 중보기도는 드릴 수 있으나 그 기도를 받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중보자가 있다는 주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있다는 뜻으로 에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니 큰 오류가 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1-2)

다시금 신사도 운동가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 중보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중보는 우리 자신을 가장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활동이다. 중보가 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예수님의 모습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분은 중보하는 삶으로 일관 사셨다.(딕 이스트만)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는 인류의 죄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죽었으며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를 세웠다. 즉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가 존재하여야 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더 이상의 중보자는 필요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유일하신 중보자이시다. 구약의 중보자는 약속하신 자손만이 오실때까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유함을 받았는데 왜 다시 속박되려 하는가?

(2) 중보기도가 은사라는 주장
신사도운동가들의 주장하는 중보기도의 은사는 다음과 같다.
- 오래 기도한다. 최소한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기도한다.
- 훨씬 더 강도있게 기도한다.
- 기도를 즐기고 개인기도 시간을 만족해 한다.
- 기도 응답이 많고 또 극적인 편이다.
-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고 많은 경우 예언의 은사를 함께 갖고 있다. (피터와그너, 방패기도, 56쪽)

기도의 시간이 문제가 되는가? 하나님은 오래 기도를 하거나 강도있게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결국 신사도운동에서는 사도라고 불리는 자신들만이 특별한 중보의 은사를 가졌으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예언의 은사를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중보기도는 하님이 들어줄 수도 있고 혹은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특별한 중보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중보의 기도를 할 수 있으며 그 기도에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다. 만약 중보자가 인정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 중보자의 기도를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의미가 된다.

- 하나님은 오늘날 중보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부르셔서 추수를 위한 커다란 그물을 만들고 계십니다. 전례없는 엄청난 숫자의 중보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롯과 나오미,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드보라와 바락들을 함께 불러 마지막 시대의 전투를 감당하게 하고 계십니다. (신디제이콥스, 대적의 문을 취하라, 96쪽)

중보자들이 매우 많다는 주장도 이상하지만 왜 중보자들이 추수의 그물을 만들고 있는가? 중보자들이 사람들의 죄를 선택적으로 용서하거나 구원 사역이나 심판 사역에 참여하는가? 게다가 중보자들이 마지막 시대의 전투를 감당한다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중보자(meditator)'는 전투를 감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리 사절, 화해자, 중재자를 뜻하며 화해와 평화의 언약을 중재하는 사람이다.
신디 제이콥스가 말하는 중보자는 성경이 언급하는 화해와 평화의 언약을 중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특공대이며 성경에는 그런 중보자는 언급하지 않는다. 특히 중보기도도 하나의 기도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그러나 신디 제이콥스를 비롯한 신사도운동가들은 중보기도를 견고한 진을 파괴하는 기도라 부르고 있다.

(3) 중보기도가 영적전쟁이라는 주장
과연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영적인 전쟁인가?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복음에 힘쓰던 여인들을 돕고(빌 4:3)”에 대해서 피터 와그너는 바울이 “나를 대신하여 영적인 싸움을 싸웠도다 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번역 성경은 모두 애쓰다, 수고하다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그 헬라어 단어는 협력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피터 와그너는 기도로 에이즈 감염률이 33.3%에서 5%로 떨어졌다고 말하며 광우병이 사라진 것도 그의 중보기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악이 사단의 원인이며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결론적으로 사도의 체제로 바꾸어서 중보자들이 중보기도를 하면 이 세상의 악과 재앙과 질병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4) 중보기도는 비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주장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그 중보기도는 서로에게 비밀로 유지되었는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기도하였을까?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 12:5)
성경을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기도가 비밀유지를 하면서 행하여졌다는 언급이 없다. 사도바물은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공개적으로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성경은 서로 비밀유지를 하면서 기도를 하라고 언급하지 않으며 합심하여 기도를 하라고 말하고 있다.

(5) 중보기도가 예언이라는 주장
중보기도는 은사도, 능력도 아니며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기도다.
어떤 사람들은 중보기도를 비밀유지를 하라고 말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중보기도를 예언기도라 하니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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