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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4일 토요일

[신사도운동 비판]12. 요엘의 오순절 성취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추가 보충]
 제목때문에 "그럼 마지막 날에란 찬양은 잘못된 찬양?"이라고 오해하실까봐... 물론 그런 CCM들도 없는건 아니지만... 아래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문제될 것은 없는듯 합니다.(다만 주제가 요엘서(저 찬양의 가사와 관계된)와 관련되어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쓴 건데, 이단과 관련있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겠네요.) '마지막날'을 예수님의 초림~재림의 순간으로 해석되는 말세로 해석을 하면(종말의 의미가 아니라!!!) 충분할 듯 합니다. 오순절에서 요엘서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되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후에 성령의 역사가 계속 되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이미 하나님을 영접했다면 성령님께서는 이미 내주하고 계십니다.(우리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다시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에게도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이면 오해가 없을 듯 합니다.



신사도운동은 요엘의 성취가 오순절에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종말적으로 두 번째 오순절과 같은 성령 대부흥이 자신들을 통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1) 요엘의 성취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16-21)
성경은 오순절의성령강림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행 2:16에 대한 다른 번역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역성경]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공동번역]이것은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표준새번역]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대로 된 것입니다.
즉 오순절 성령강림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 예언된 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이 요엘 선지자에게 이미 말씀하셨던 것의 성취이며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그 성령이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의 영향을 받은 마이클비클, 인터콥의 최바울, 큰믿음교회 변승우목사는 요엘의 성취가 오순절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오순절이 아닌 마지막 시대, 곧 종말적으로 성취된다는 주장을 한다.

(2) 자녀,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
성경본문에서 말하는 자녀, 젊은이, 늙은이, 남종, 여종은 어느 특정한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 즉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구약에서는 선지자와 예언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만인에게 성령이 주어진다는 표현이다.
즉 본문은 만민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만약 신사도운동과같이 문자적인 해석을 한다면 늙은이만 꿈을 꾸는가? 남종과 여종들만이 성령을 받는가?

(3) 말세에
신사도운동의 목사들은 성경 본문에 ‘말세에’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이 요엘의 예언은 종말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말세에’라는 단어는 ‘에스카토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 단어는 ‘끝, 마지막’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나중, 뒤’라는 의미도 있다. 성경에서 그 용례를 찾아보겠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에스카토스)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마 12:45)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에스카토스)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자가 많으니라 (마 19:30)
또 에스카토스는 마지막 종말적인 말세가 아니라 신약 전체의 시대를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스카토스)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2)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스카토스)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전 1:20)
사도행전에서 요엘서가 성취되지 않았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요엘서의 본문을 인용하지 않았어야만 한다.
성경에서는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시간을 종종 ‘말세’로 표현하는데 이 상당한 간격의 시간을 성경은 하나의 캔버스로 섞어 함께 설명을 하게 된 것이다.
[호크마주석] 말세에 : 유대인들의 말세란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가리킨다.(사 2:2, 미 4:1) 베드로가 이 말을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 강림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를 지칭하는 종말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종말 개념은 신약시대에 와서 생겨난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학자 조지래드의 견해] 선지자들은 연대에는 관심이 없었고 미래는 언제나 임박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섞어 한 캔버스에 그렸다. 성경의 예언들은 삼차원이 아니라 이차원이며 높이와 넓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먼 사건도 임박이라는 투명함을 통하여 보았다. 초대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로 산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종말을 기대하며 사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성경적 예언의 본질인 것도 사실이다.

(4)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마이클비클은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은 곧 심판의 날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즉 요엘서의 성취는 오순절이 아니라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다.(욜 2:31)
그렇다면 말라기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인가? 예수님은 선지 엘리야를 세례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12-13)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요엘서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가 마지막 심판날을 의미한다면, 말라기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도 마지막 심판날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온 시간은 만지막 심판날이었는가?

(5) 만민에게 부어주는 영
마이클 비클은 요엘서는 ‘만민’에세 부어준다고 했는데 오순절에는 120명의 유대인과 그 날 구원받은 3000명에게 지역적으로 부어졌을 뿐이기 때문에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성경구절은 오순절 하루에만 성령을 부어준다는 뜻이 아니며, 오순절을 시작으로 하여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준다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에서는 계속적으로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는 사건들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예수를 믿는자에게 성령이 임하며 동일한 한 성령이다.
결국 신사도운동 목사들은 자신들을 통하여 대부흥이 일어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있다는 것을 짜맞추기 위하여 자신들의 교회를 성경에 예언된 것으로 주장하며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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