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쓰러짐
빈야드 운동의 집회에는 ‘넘어지는 시간’이 있는데 그것은 푹신푹신한 양탄자 혹은 스티로폴 위로 넘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이들은 이를 ‘입신’이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안식’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성령 안에서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성경에서도 ‘성령 안에서 죽음’을 말한 적이 없으며 쓰러짐을 안식이라 말한 적도 없다. 또한 성령을 받고 쓰러진 경우도 성경은 언급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기도해 주는 사람이 밀어 넘어뜨리는 수도 있고 넘어진다는 것에 대해 미리 알려주므로서 최면의 힘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2) 그들의 문제점
1)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무질서한 현상 위주의 집회
2) 은사남용주의와 은사의 전이(임파테이션)
3) 비신학적, 비교리적, 비성경적인 체험 위주
4) 기복신앙과 물질적인 헌금 강요
(3) 쓰러짐의 현상에 대한 성경적 반증
성경을 보면 쓰러짐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 17:15)
성경은 귀신이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마귀에 의해 넘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병자들의 병을 고칠 경우 오히려 일어나게 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 5:8)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막 5:42)
성령이 왜 우리를 쓰러지게 하는가? 우리는 쓰러질 어떤 이유도 없으며 쓰러지지 않는다고 우리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쓰러지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쓰러짐은 아무 유익도, 소용도 없는 불필요한 현상이다.
(4) 빈야드 영적 체험 비판
존윔버는 넘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에스겔 1:28을 인용한다. 그러나 에스겔이 엎드린 것은 성령이 임해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느끼고 스스로 에스겔이 엎드린 것이다. 또한 예수를 잡으러온 군사들(요 18:6),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마28:4), 귀신이 고꾸라진 것(막9:20)의 성경구절을 제시하지만 군사와 파수꾼등은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었으므로 성령의 역사와 전혀 무관한 것이다.
참된 신앙의 정서는 쓰러지게 될 것이라는 집단최면, 감정, 느낌, 흥분 상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통한 내적인 감동과 조명을 통해 오기 때문에 육신에 나타나는 반응이 참된 정서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성령충만은 비록 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도 결국은 내적인 성령의 충만감을 뜻한다.
(5) 성령의 역사
이런 집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라고 신사도운동가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성도에 대한 주요한 사역은 다음과 같다.
1) 죄를 깨닫게 함 (행 5:31-32)
2) 거듭나게 하심 (요 3:3, 5)
3) 성도와 함께 함 (롬 8:11)
4) 진리를 깨닫고 믿게 함 (요 14:26)
5)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함 (롬 8:16)
6) 위로함 (요 14:16-26)
7) 기쁨을 줌 (롬 14:17)
8) 분별력을 주심 (고전 2:10-16)
9) 열매를 맺게 함 (갈 5:22)
10) 은사를 주심 (고전 12:3-11)
11) 성령 충만케 함 (행 2:4)
12) 거룩하게 하심 (롬 15:16)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를 더 이상 없다고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느 개인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원할 때마다 그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매번 기적을 만들어 주신다는 신앙은 신비주의라고 보아야 한다.
성령께서 개인적이며 일상생활적인 것까지 일일이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 가르쳐 주셨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 자기 자신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성령의 감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라고 단언하여도 좋다.
특히 마이클 비클의 IHOP이나 큰믿음교회는 선지자학교, 예언자학교를 만들어서 개인에 대하여 예언을 하도록 한다. 어느 성경에 장래의 점을 쳐주고 예언을 하여 주라고 말하는가? 오히려 성경에서는 점을 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레 19:26, 신 18:14, 왕하 17:17, 렘 14:4, 렘 27:9, 미 5:12, 계 9:21, 계 18:23 등)
어떤 사람은 아침에 성경책을 임의로 펼쳐서 손가락으로 짚는 구절을 정하여 그것이 성령께서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메시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다. 기독교는 이런 속된 무속적 신앙이 아니다.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므로 공부나 학습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초대교회는 교사라는 직분이 있었다.(고전 12:28, 14:19, 롬 12:7, 엡 4:11)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인간 교사를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에 덕을 세우도록 주어지는 것이다(고전 14:12) 성령의 가르침이란 인간의 노력을 전혀 배제하여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6)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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