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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8일 화요일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 브래드 피트, 밀라니 로랑

 정말 멋진, 잘 만든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2차 대전.
 그런데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역사를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는 영화라니!

 타란티노는 영화를 만화처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 긴 러닝타임을 한 호흡으로 가져가기보다는 몇 개의 챕터를 찍은 후 이를 하나씩 보여준다. 펄프픽션에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도 그러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각 챕터에서 무리하게 서사를 진행하기보다는, 단편 소설처럼, 한 장의 사진처럼 보여준다.

 타란티노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매우 뚜렷한 감독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특징들이 잘 묻어난다. 
 소름끼치게 잔인한 장면들이 나온다. 사실 그점에 대해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두번째 챕터를 보면 나치를 때려잡는 "개떼들"이라는 조직이 나오는데, 지극히 잔인하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일반적으로는 의도했다고 볼 수 있지만, 타란티노이기에 '폭력'을 위해 그저 이런 장면을 끌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챕터에서 유태인을 죽인 나치 장면 이후에 나타나 마치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의 독립군의 모습처럼 보여 한편으로 통쾌하다.('통쾌함'은 감독의 의도일 것으로 확신한다.)
 대사가 점층적으로 발전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원래 대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에 드라마 '셜록'을 봐서 그런지 그렇게 대사가 많다고 생각들지는 않는다. 약간의 스포를 하겠다. 만약 영화를 안봤고, 볼 계획이 있다면 이 문단이 끝나는 곳까지는 패스하시는게 낫겠다. 첫번째 챕터에서 나치의 란다 대령이 한 가정집에 들렀다. 멀리서 나치가 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뭔가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사정이 있음은 분명하다. 대령은 우유 한 잔을 달라고 한다. 대령은 유대인은 쥐새끼라고 한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당신은 쥐새끼에게 이 맛있는 우유를 대접하냐고 묻는다. 정확한 타이밍이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쯤 마룻바닥 아래를 클로즈업하는데, 거기에는 아까 딸 중에 하나가 포함되어있다. 대령은 자기는 다른 나치 군인들과는 달리 유태인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기에 그 누구보다 잘 찾아내고, 잘 죽인다고 한다. 이런 대화와 마룻바닥 아래에서 입을 막고 숨죽인 채 있는 딸들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식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이후 챕터에서 대령과 그 숨죽인 딸이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이 대령은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유를 주문한다. 이런 장면들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이를 대화로 더욱 발전시킨다. 대화를 통한 서스펜스는 감독의 특기인 듯 하다.
 첫번째 챕터에서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 얘기를 했으니 말인데,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그이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를 못한건 아니다. 단지 란다 대령이 뿜어내는 악역의 포스는 어마어마할 뿐이다.
 화면에서 갑자기 화살표를 가리키며 누구라고 알려준다. 마치 만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음악도 굉장히 잘 사용하는데, 대사와 어우러져 분위기를 잡는다. 이런 극적인 표현들, 만화적 요소들이 곳곳에 베여있다.
 사실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쉽지 않기에 작전이라는 것을 세운다. 그리고 각 사람마다 생각이 모두 다르기에 각자 작전을 준비한다. 현실 세계는 이런 각 개인의 작전이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이런 의지의 충돌에서 누군가의 작전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작전이 적을 무찌르는 것이라면 실패는 안타까운 법이다. 공동의 적이 있고, 그 공동의 적에 대해 각자 다른 준비를 하는데, 계속해서 실패는 일어나지만,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이들이 어우러지며 하모니를 이루는 장면이 나타난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것들은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계속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결말이 어떠할지는 알지만, 어떻게 그게 이루어질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기에 뻔한 결말도 타란티노가 만드는 영화는 뻔하지 않게 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전쟁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학살, 폭력은 나타나지만 말이다. 그는 전쟁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이렇게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은 그저 복수와 그 통쾌함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다.
 그 복수를 보며 통쾌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통쾌해하는 내가 또 불편하기도 하다. 물론 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약하고 힘없는 자들은 계속 당할텐데 복수를 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나는 복수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 복수가 행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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