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 제사장'을 근거로 목회자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러한 자세가 옳은 것일까?
만인 제사장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다. 구약의 성도들은 제사장을 거쳐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중보자(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예배를 드린다. 이는 완성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mediator)가 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다가갈 수 있게 하신 은혜이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계급' 구조를 탈피한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이 많든 적든 우리는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서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평등하기에 내가 누군가를 존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분명 언어도단이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까닭은, 부모님과 선생님이 나를 통솔하여 따르게 할 수 있는 까닭은(권위의 뜻) 그들이 나보다 나은 유형의 존재인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여 길러주시고, 내 삶의 본보기가 되고,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학교 선생님도 그러할진대, 우리의 영적인 스승이신 목회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너무도 분명하다. 감사하며 존경해야한다.
목회자의 뜻과 나의 뜻이 어긋날 때도 있다. 그 이유로 목회자와 반목하는가? 당신의 뜻이 그렇게 완벽하며 어긋남이 없는가? 당신은 다른 선생님께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가?
목회자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지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때는 절차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하며 교회를 분란시키거나 사적인 감정(증오)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해치는 것으로 그 성도는 목회자와는 별도로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목회자의 실수라는 것이 때로는 진실을 알지 못하여, 때로는 성도의 지식이 얕아 실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 그 오판의 값은 어떻게 치를 것인가?
바르지 못한 목회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성도가 더 많아보인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으로서 살려 노력하는가? 성도가 많은 교회인데 주일학교 교사는 부족하고, 재직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적은 것은 어떻게 된 현실인가? 목회자의 가르침이 이단적인 것도 아닌데,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내용의 깊이, 가르치는 스킬) 비방하는 것이 옳은가? 물론 부족하다면 목회자는 더욱 노력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성도는 그 목회자를 위해 더욱 사랑으로 기도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그토록 하나님의 말씀에 목마르다면서 그 목회자가 신학교, 신대원을 다니며 배운 것들을 혼자 배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가?
한국교회의 모습은 지식보다는 실천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 실천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점차 옅어진다. 기억해야할 것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성화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이것을 드러내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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